▲사진은 지난 4월 국방부가 공개한, 우리기술로 개발한 탄도 미사일이 발사되는 모습.
연합뉴스
미국·중국·러시아 탄도미사일의 사거리는 1만 킬로미터를 훨씬 상회한다. 북한 역시 무시할 수 없는 사거리를 자랑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런 사실을 생각하면 사거리 800킬로미터가 그리 자랑스러울 것도 없을 듯한데, 정부 일각에서는 우리의 군사 주권 혹은 미사일 주권이 그만큼 강화된 것이라고 자찬하고 있다.
하지만, 사거리가 1천 킬로미터를 넘고 1만 킬로미터를 넘어 지구 둘레인 4만 120킬로미터를 초과한다 해도, 이것은 결코 자랑스러운 일이 아니다. 외국이 한국의 미사일 사거리를 정해준다는 것 자체가 '미사일 주권의 강화를 운운할 정도로 한국이 과연 주권국가인가?'하는 의구심을 일으키기 때문이다.
천자국(황제국)이 제후국의 군사력에 대해 지침을 정해준 고대 중국의 사례를 보면, 한국의 국격(國格)이 지금 어떤 상태에 놓여 있는지를 한층 더 실감하게 될 것이다.
고대 중국왕조인 주나라의 행정체제를 정리한 <주례>라는 책이 있다. 이 책의 '하관' 편에서는 천자와 제후의 군대 규모를 다음과 같이 규정했다.
"군대를 조직할 때는 1만 2500명을 하나의 군(軍)으로 한다. 왕(천자)은 6군을, 대국(가장 큰 제후국)은 3군을, 다음 나라는 2군을, 소국은 1군을 갖는다." 이 숫자가 정확히 지켜지지는 않았지만, 이처럼 주나라에서는 제후가 마음대로 군대를 증강시키지 못하도록 했다.
<춘추>는 공자의 작품으로 보이는 고대 중국의 역사서다. 공자와 같은 노나라 사람인 좌구명은 <춘추>에 대해 해설을 덧붙였다. 이 책을 <춘추좌씨전>이라 한다. 이 <춘추좌씨전>의 '은공' 편에 따르면, 제후들은 도성의 축조와 관련해서도 제약을 받았다.
이에 의하면, 각급 제후가 사는 도성의 규모는 최상위 군주의 도성을 기준으로 3분의 1 혹은 5분의 1 또는 9분의 1을 넘을 수 없었다. 도성의 규모를 제한했다는 것은 도성의 넓이나 성벽의 길이 혹은 높이를 제한했다는 뜻이다. 3분의 1이냐, 5분의 1이냐, 9분의 1이냐는 제후의 위상에 따라 결정됐다.
도성은 제후의 정권을 지키는 최후의 보루 역할을 했다. 제후들이 도성을 넓게 만들거나 도성 성벽을 길거나 높게 쌓으면, 경우에 따라 상급 제후나 천자를 상대로 끈질기게 대항할 가능성이 있었다. 그래서 제후들이 도성의 규모를 마음대로 정하지 못하도록 한 것이다.
한국 MD 참여 의혹... 제후국 1차 방어선 역할과 유사 이런 사례들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고대 중국의 제후국들은 군사력 규모를 마음대로 결정할 수 없었다. 제후국들은 천자국의 지시를 받아, 혹은 천자국과의 협의 하에 그것을 결정하곤 했다. 제후국이 천자국과 관계없이 독자적으로 결정한다면, 명목이 어떻든 간에 그 나라는 더 이상 제후국이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