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정부 시절 김현희 KAL기 사건의 조작의혹과 관련해 증인으로 채택된 김현희씨가 9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원회 국정감사에 참석하지 않아 증인석의 자리가 비어있다.
유성호
김현희는 결국 나타나지 않았다.
국회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원회는 9일 방송통신위원회 국정감사에서 '김현희 가짜설'과 관련해 김현희씨를 증인으로 불렀지만 김씨는 출석하지 않았다.
김씨와 함께 증인으로 채택된 김만복 전 국정원장이 나왔지만, 핵심 증인인 김씨가 빠지면서 처음부터 의혹 해소와는 거리가 멀었다. 동일한 사안으로 출석 요청한 정연주 전 KBS 사장도 불참했다. 세 증인은 모두 새누리당에서 요청해 채택됐다.
1987년 11월 29일 대한항공(KAL) 858기를 폭파해 총 115명의 목숨을 앗아간 테러사건의 주범인 김씨는 지난 2008년 10월 전직 안기부 직원이었던 이동복 북한민주화포럼 상임대표에게 편지를 보내 참여정부에서 국정원을 중심으로 경찰과 방송사가 짜고 '자신은 북한의 공작원이 아니다'는 진술을 압박했다고 주장했다. 김씨는 올해 6월 이틀 연속으로 종편 'TV조선'에 출연해 같은 주장을 반복했다.
김 전 국정원장은 국정감사에서 조해진 새누리당 간사의 질문에 "김현희는 진짜"라면서 "김현희가 국정원이 자신을 가짜로 만들려고 했다는 말을 하고 있는데, 국정원은 김현희를 가짜로 만들려고 한 적이 없다"고 말했다. 그는 2003년 11월 MBC 'PD수첩' 제작진이 숨어 지내던 김씨의 집에 취재를 간 것은 국정원의 도움이 있었기 때문 아니냐는 질문에 "국정원은 김현희의 주소를 가르쳐 주지 않았다"면서 "우리나라의 언론자유는 대단히 발달해 있다, 취재능력이 대단하다"고 반박했다.
두 개의 '김현희 가짜설'이날 국정감사장에서 캐물으려고 했던 사안은 소위 '두 번째 김현희 가짜설'의 진상이다.
현재 대한민국에는 두 개의 김현희 가짜설이 존재한다. 첫째는 기원이 꽤 오래됐다. 제13대 대통령 선거 바로 전날인 1987년 12월 15일 자살을 방지하기 위해 입을 테이프로 봉한채 김현희가 국내로 압송돼 비행기에서 내리는 장면이 전파를 타자마자 '김현희는 가짜다'라는 주장이 제기됐다.
핵심은 "안기부에 의해 기획된 자작극"이라거나 "북한의 테러 계획을 사전에 알고 있었으면서도 이를 정략적으로 이용할 목적으로 저지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희생자 유족과 사회단체, 일본 언론인, 종교단체 등이 의혹의 발신지였고, 세월이 흘러도 사그러들지 않았다. 진상 규명의 목소리는 참여정부 시기인 2003~2004년 최고조에 이른다.
하지만 이 의혹은 2006년 '국정원 과거사건 진실규명을 통한 발전위원회(국정원 진실위)'의 조사결과 발표로 한풀 꺾인다. 의혹을 제기했던 민간인들도 직접 참여해 당시 사건 기록을 꼼꼼히 살펴본 결과, 북한 공작원에 의해 자행된 사건이며 김현희는 가짜가 아니라고 결론 맺었다. 국정원 진실위에서 조사한 7대 우선 조사 대상에서 결론이 바뀌지 않은 것은 이 사건이 유일했다. 물론 유족 등 일부에서는 반발했지만, 이 조사를 계기로 '김현희 가짜설'은 한풀 꺾인다. 한 가지 흠이라면, 김현희씨의 거부로 그를 직접 조사하지 못했다는 점이었다.
논란은 그렇게 마무리되는 듯했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 들어 두 번째 김현희 가짜설이 등장한다. 정확히 표현하면 '김현희 가짜설 조작설' 또는 '김현희 가짜설 강압설'이다. 핵심은 참여정부 들어 국정원이 김현희씨에게 '자신은 북한 공작원이 아니다'라는 거짓 증언을 요구, 압박했다는 것이다. 이번 의혹의 발신지는 김현희 자신이었다.
김씨는 2008년 10월 이동복 북한민주화포럼 상임대표에게 편지를 보내 이같이 주장했다. 그는 국정원이 진실위 조사를 받으라고 요구했고, 자신이 거부하자 각종 경로를 통해 압박했으며, 급기야 방송국 카메라가 자신의 집에 들이닥쳐 취재를 했는데 국정원이 알려주지 않았으면 어떻게 알았겠느냐고 말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이 '좌파정부의 음모'라고 주장했다.
9일 문방위 국정감사에서 김씨를 증인으로 채택했던 이유는 이 두 번째 가짜설을 밝히기 위해서였다.
문방위에서 왜?... 체면만 구긴 문방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