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도 켜지 않은 테라스에서 뚝(고창석)이와 맥가이버(강석필)가 가족을 위해 고기를 굽고 있다.
유성호
나이와 직업에 거리까지 사라진 공동주택 사람들의 관계는 한층 더 진하다. 아이들은 심심하면 속옷 바람으로도 이집저집 기웃거린다. 아침밥이 급할 때면 다른 집에 후다닥 달려가 밥을 얻어오는 일도 다반사다. '이웃' 이상으로 가까운 모습이다. 뚝은 "동료 배우들도 공동주택에서 사는 걸 부러워한다"고 말했다.
"다른 집 아저씨가 밤늦게 술에 취해 들어와선 현관 번호 키를 잘못 눌러서 삐삐 소리가 날 때가 있어요. 처음엔 놀랐는데 이젠 익숙해져서 '아 힘든 일 있었구나'하고 넘기고, 다음날 보면 '멀쩡해?'라고 묻고 그래요. 가족이 되어가는 느낌이랄까(신데렐라)." 함께 아이들을 키우다 보니 서로 고민을 털어놓거나 조언을 해줄 때도 많다. 호호는 "'3층 애가 우리 집에 와보니 이렇더라'고 말해주는 등 부모가 보지 못했던 모습들을 보면 공유한다"고 말했다.
공동주택 밖에서 만나는 마을 사람들도 이들에게는 소중하다. 성미산마을은 '번개(갑작스러운 만남)'가 잦다. 밴드, 드럼, 요가 등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취미활동 모임을 많이 꾸리기 때문이다. 마을 사람들은 해마다 1번씩 열리는 마을 축제와 성미산학교 운동회도 직접 운영하고 있다. 그물망처럼 얽힌 다양한 마을 내 모임은 사람과 사람을 연결해주고 있다.
2003년과 2010년 겪은 두 번의 싸움 역시 마을 사람들을 하나로 묶은 끈이었다. 2003년 1월 서울시는 성미산에 배수지를 짓겠다며 기습적으로 벌목을 강행했다. 성미산 정상은 붉은 살을 드러냈고, 시에서 고용한 용역업체와 포클레인에 맨몸으로 맞선 주민 여러 명이 다쳤다. 어렵게 지켜낸 성미산은 2010년 홍익재단이 남사면 숲을 밀어 홍익대학교 사범대학 부속 초중고를 세우겠다고 발표하면서 또다시 위기에 처한다. 비록 성미산을 온전히 지켜내지 못했지만, 남은 지역을 생태공원으로 만들기 위해 노력 중이다.
제각각 흩어진 섬 같던 사람들이 하나로 모인 마을에서 주민들은 편안함을 느낀다. 신데렐라는 "사회생활에서 스트레스를 받고 나면 드는 생각이 '이따 마을 가서 풀어야지'"라며 "마을에 들어와서 동네 아줌마와 수다를 떨거나 밴드나 연극 등 여러 활동들을 하다 보면 정서적으로 편해진다"고 말했다. 맥가이버는 얼마 전 한 출판기념회에 갔다가 "혹시 성미산마을 주민 아니냐"는 질문을 받았다. 맥가이버가 이유를 되묻자 그 사람은 이렇게 답했다.
"당신 표정에서 보였어요. 성미산마을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얼굴이 편안하거든요." 비판도 과제도 있지만 '얼토당토않은 꿈'으로 해결하는 사람들 하지만 '중산층들만의 공동체 아니냐'는 비판도 존재한다. 토끼 역시 "공동주택을 짓는데 다 합쳐서 21억 원 정도 들였다"며 "(공동주택을 짓고, 마을에서 살아가는 일이 손쉽다고) 착각하면 안 된다"고 말했다. 호호와 모짜렐라는 '이런 집 짓고 싶은데 참 꿈 같다'는 기자의 말에 "우리 집은 은행이 지어줬다"는, 진심 섞인 농담으로 여러 번 대꾸했다.
성미산학교를 '귀족학교'라고 부르는 사람들도 있다. 비인가학교로 정부 지원을 받지 않는 이곳은 매달 부모들이 일정금액씩 부담하는 비용으로 운영되고 있다. 5학년 자녀를 둔 호호는 월 48만 원 정도를 낸다. 하지만 "다른 가정이 사교육에 쓰는 비용과 비교하면 큰 차이가 없다"고 말한다. 호호는 "성미산마을이 '중산층을 대변한다'는 말은 절반만 옳다"며 "여건의 차이가 다양하다"고 설명했다.
마을이 점점 넓어지고 그 속에 살아가는 사람들이 다양해지는 것은 새로운 고민거리다. '육아공동체'로 시작한 곳이다 보니 지금껏 마을 활동은 가족 단위 중심으로 이뤄져 왔다. 결혼을 안 했거나 혼자 사는 사람들, 자녀가 없는 사람들의 마을 활동이 상대적으로 제약받는다는 지적이 나오는 배경이다.
"그래도 마을 안에서 이런 분들을 논의하고 해결책을 찾으려 하는 게 또 하나의 가능성 아닐까요(호호)?" 한 아이를 키우기 위해 마을을 만들고, 가족이 필요해 공동주택까지 지은 성미산마을 사람들의 힘은 어디에 있는 걸까. 다람쥐는 "이 동네 사람들은 얼토당토않은 꿈을 많이 꾼다"고 말했다. 모두 함박웃음을 터뜨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함께 꾸는' 얼토당토않은 꿈은 현실이 된다. 성미산마을은 오늘도 꿈을 꾸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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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옷 바람으로 이웃집 기웃기웃 얼토당토 않은 꿈이 현실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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