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산강 너머로 보이는 선도산. 하얗게 눈이 쌓인 봉우리들이 서악고분군이다.
정만진
무열왕릉의 뒷산인 선도산을 오른다. 선도산은 김유신의 누이 문희의 자취가 서려 있는 유적지다.
김유신에게 두 누이가 있었다. 언니가 보희, 동생이 문희였다. 언니 보희가 꿈을 꾸었다. 서악(西岳, 선도산)에 올라가 오줌을 누었는데, 서울이 오줌에 잠겼다. 그것도 아침에였다.
처녀가 아침부터 산꼭대기에 올라 오줌을 누었다는 것도 망칙했지만, 그 오줌이 경주 시내를 가득 채웠으니, 남들이 알까봐 극구 숨길 만한 창피한 꿈이었다. 보희는 걱정이 되어 동생 문희에게 꿈 이야기를 했다. 그런데 문희가 대뜸 '언니, 그 꿈, 내가 사겠어요' 했다. 좋지 않은 꿈인 것만 같아 마음이 상해 있던 보희는 동생의 제안에 '얼씨구나' 화답을 했다. 보희의 꿈은 문희의 비단치마[錦裙]와 교환되었다.
문희는 언니의 꿈을 좋게 해몽했다. 오줌이 서울을 메웠다는 것은 나라를 지배할 신분이 된다는 암시로 보았던 것.
그로부터 열흘 정도 뒤, 오빠인 유신이 춘추공과 집 앞에서 공을 찼다. 유신은 일부러 춘추의 옷을 밟아 옷띠를 떨어뜨리고는 집에 들어가서 바느질을 하자고 했다. 유신이 언니 보희에게 춘추공의 옷띠를 꿰매드리라 하니 '어찌 처녀가 춘추공 같은 귀공자를 가볍게 만나 옷을 꿰맬 수 있겠습니까?' 하며 거절했다. 그리하여 공은 문희에게 넘어갔다.
선덕공주의 도움으로 성사된 문희와 김춘추의 결혼두 사람은 그 날 이후 서로 사랑하는 사이가 되었고, 문희가 임신을 하는 사태에 이르렀다. 하지만 춘추에게는 이미 부인이 있었다. 두 사람은 결혼도 못하고 아기를 낳지도 못하는 어려운 지경에 처했다. 유신은 선덕공주가 남산에 행차하는 날, 마당 가운데에 나무를 쌓아놓고는 문희를 태워 죽인다며 난리법석을 떨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