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류성당모악산은 종교의 성지와 같은 곳으로 여러 종교가 모여들었다. 천주교도 예외는 아니었다
김정봉
귀신사는 이런 모악산 기슭에 삼국을 통일한 신라에 의해 정략적으로 세워진 절이었다. 통일국가의 지배이념인 화엄사상을 전파하고 반감서린 백제의 민심을 수습하기 위해 세워진 화엄십찰의 하나로, 그 당시에는 부석사, 화엄사, 해인사, 범어사 등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절이었다.
지난날의 영화는 사라지고 이제 귀신사는 아담한 절로 남았다. 귀신사로 오르는 계단 길 양 옆으로 몇 그루 나무가 줄지어 서있는데 소박하다 못해 애처롭게 보인다. 속세에서 바로 절로 오르지 말라는 의미일 게다. 일주문을 대신하듯 계단길이 끝나는 지점에 두 그루의 나무가 서있다.
몇 발자국이면 닿을 거리이지만 느릿느릿 발걸음을 아꼈다. 마침내 대적광전 앞마당에 닿았다. 시간은 몇 분 안 걸렸지만 내 머릿속에 작년 여름 강진 무위사를 갔을 때의 실망감과 무위사를 대신할 만한 절을 찾았다는 안도감이 교차하고 있었다.
무위사는 이제 예전 무위사가 아니다. 천왕문을 지나 극락전에 이르는 소박한 길은 보제루의 건물이 가로 막고 있다. 처음 무위사를 가본 사람이면 덜하겠지만 예전의 무위사를 기억하는 사람이면 절을 망쳐놓았다는 절망감마저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