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기출입양 보내지기 전
박기출
모국인 한국에 돌아와서 살고 싶어 하는 해외입양인들에 대한 열악한 정부지원 문제를 생각하며 지난 2일 서울의 한 병원에 입원해 있는 이탈리아 입양인 박기출씨(이탈리아 이름 Giovanni Iovane)를 만났다. 박씨는 1967년 6월 12일 경남 밀양에서 출생한 것으로 기록되어있다. 그러나 그로부터 약 2년 후인 1969년 3월 그는 서울역에서 버려진 채로 행인에 의해 발견되었다.
그 후 고아원과 홀트를 거쳐 1971년 11월 5일 박씨는 이탈리아로 해외입양 보내진다. 박씨 양부모에 의하면 어려서 박씨는 한국어를 말했다고 한다. 그러나 지금 그는 한국어를 전혀 모른다. 그리고 그가 기억하는 한국과 관련한 어린 시절도 이탈리아 공항에 도착하여 양부모가 자기를 맞이하는 기억이 전부다. 그의 한국어와 한국에 관한 기억이 그의 뇌에서 전부 사라진 것이다. 사실 이런 모국어와 모국에 대한 망각증 현상은 해외입양인들에게 종종 발견된다.
한편 박씨 입양부모는 1927년과 1930년 생으로 입양부는 엔지니어 입양모는 고등학교 수학교사였다. 입양부모는 박씨 위로 친아들 하나와 아래로 친딸 하나를 두었다. 3남매 중 박씨만 해외입양인이고 나머지 둘은 친자녀다. 박씨도 다른 해외입양인들처럼 심한 인종차별에 시달리면서 자랐다. 그러나 자신이 매일 매일 직면하는 인종차별의 아픔을 백인 입양부모나 입양형제는 전혀 이해 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는 항상 외톨이였다.
20세 때인 지난 1987년 박씨는 당시 이탈리아군의 의무복무를 마치고 군에서 전역하며 이탈리아를 떠나기로 결심한다. 자기가 자라난 나라인 이탈리아의 인종차별에 대해 넌더리를 느낀 그는 군 제대 직후 홍콩에 있는 이탈리아 식당에 웨이터로 직장을 구해서 출국한다. 그 후 박씨는 홍콩에서 1년, 영국에서 4년, 독일에서 1년, 남미 베네주엘라와 콜롬비아에서 3년을 식당 웨이터로 일하면서 외국생활을 전전한다.
홍콩에 살면서 자기와 비슷하게 생긴 중국인들을 매일 보면서 박기출씨는 모국인 한국을 방문하고 그래서 꿈에서 그리던 친부모를 찾고 싶어졌다. 홍콩에 살면서 박씨는 자기가 이제 더 이상 백인들의 인종차별에 시달리지 않고 같은 황인과 함께 사는 것이 너무 좋았다. 그래서 1988년 5월 그는 홍콩에서 무작정 한국을 방문한다. 그리고는 홀트로 달려갔다.
그러나 홀트에서 박씨는 친부모에 대한 정보를 전혀 알 수 없었다. 단지 자기가 밀양이라는 곳에서 태어났고, 서울역에서 미아로 발견된 후 이름도 본명이 아니라 병원의사가 지어준 것이라고 통보받은 것이 그가 아는 자기 뿌리에 대한 전부였다.
홀트에서 풀이 죽어서 돌아오다가 그는 길거리에서 한 아이가 부모님 손을 잡고 아장아장 함께 걸어가는 것을 보았다. 그 순간 박씨는 극도의 질투심이 느껴졌다. "왜 나는 저럴 수가 없었나? 왜 나는 친부모 손을 잡고 걸을 수 없었나? 삶이 왜 이렇게도 불공평 한가?" 하는 자괴감, 절망감, 불쾌감, 알 수 없는 아픔이 갑자기 그를 엄습했다.
그래서 한국에 오자마자 그는 한국에 온 것을 크게 후회했고 한국을 빨리 떠나고 싶었다. 그래서 간신히 표를 구해 한국에 온지 이틀 만에 박씨는 한국을 급히 떠났다. "다시는 이 저주의 나라를 방문하지 않겠다!"고 그는 절규했고 마음 깊이 다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