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완득이> 한 장면. 옆 집에서 낸 소음 때문에 괴로움을 호소하고 있는 주인집 아저씨.
영화 <완득이>
우리 방과 옆집의 거실이 벽 하나를 사이에 두고 붙어 있었다. 어느 날 밤에, 그 집 부부가 정겹게 소곤소곤 이야기하는 소리가 들렸다. 그때 든 생각이 '아, 여태 우리 부부 목소리도 옆집에 다 들렸겠네!' 였다. 진짜 민망했다.
그리고 여름엔 더워도 창문을 열 수가 없었다. 밖에서 우리 방이 훤히 보일 테니, 더워도 선풍기 틀어 놓고 창문을 꼭꼭 닫고 살았다. 사실 이 정도 고통은 참을 만했다.
하지만 변기에 똥이 둥둥 떠다니는 것을 본 뒤, 비가 오면 잠을 설쳤다. 변기가 넘칠까 봐. 그런 날은 우울했고, 남편과 싸웠다. 그때 든 생각, '사람이 사랑만으로는 살 수 없겠구나' 였다. 그리고 다음 해, 여름이 오기 전에 우린 이 집에서 이사했다.
이사를 하려면 목돈이 필요했다. 이미 받은 대출의 원리금 내는 것도 힘들어 추가대출을 받을 수가 없었다. 궁리 끝에 생각해낸 묘안은 남편 회사 가까운 곳으로 이사해 남편의 차비와 점심값으로 추가대출 원리금 낼 돈을 마련하는 거였다. 월급을 받으면 대부분 돈은 대출 원리금으로 들어가고 얼마 안 되는 돈으로 생활했다. 쓸 돈이 없으니 절약은 할 수밖에 없었다.
아이가 태어났지만, 옷은 주변에서 얻어다 키웠다. 옷을 사 준 기억이 별로 없었다. 회사 가까이 구한 집은 전세 3000만 원에 방이 두 개였고, 여전히 반지하였다. 반지하라 그런지 아이는 감기를 달고 살았고 급기야 돌 즈음 입원을 했다. 집엔 햇빛이 잘 안 들어와서 불을 켜도 어두컴컴했다. 아이 눈이 나빠질까 걱정이 되었다. 햇볕이 안 드는 집에선 빨래도 잘 안 말랐다. 그래서 빨래 틀을 골목에 내다 두었다. 다음번 이사에선 아이를 위해서도 지상으로 올라가고 싶었다.
그즈음 IMF가 터지고, 보험회사로 이직한 남편 친구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남편 친구는 용돈 2만 원만 아껴 보험 하나만 들어달라고 부탁을 했단다. 남편은 매달 2만 원을 마련할 길이 없어서 친구의 부탁을 거절했다. 남편은 가끔 그때 일을 이야기한다.
"아마 친구는 돈이 없어서 보험을 못 들어준다고 했던 내 말을 거짓이라 생각했을 거야. 얼마나 섭섭했을까?""진짜 어렵긴 어려웠나 봐. 당신 성격에 어떻게 그런 부탁을 거절했을까?" "그때, 대출은 여기저기서 받았지. 어머니 병원비도 들지. 첫째 태어났지. 게다가 상여금도 줄었잖아."우리가 겪었던 일인데도 단돈 2만 원 없었다는 게 지금은 실감이 안 간다. 경제적 압박이 심해서 첫째가 돌이 되고 내가 계약직으로 취업했었다. 그리고 경기가 안 좋아지면서 역전세난이 나타났다. 덕분에 우리는 희망하던 3500만 원 지상 전셋집으로 올라갈 수 있었다.
그리고 2년 뒤 우린 낡은 시영아파트 꼭대기 5층으로 이사를 했다. 방은 하나에 전세금은 5000만 원이었다. 춥고 더운 것은 기본. 아침에 남편이 화장실에서 씻으면 주방 물이 안 나왔다. 바쁜 아침에 속이 터졌다. 그리고 화장실이 얼마나 좁은지 아이를 목욕시킬 때 아이가 일어서면 세면대에 머리를 쾅쾅 부딪쳤다. 아이가 아프다고 울 때마다 좁은 집에서 살게 하는 게 어찌나 미안했는지 모른다. 아기를 안고 죄책감에 마음이 아팠다. 그 집에서 둘째도 낳았다.
대출받고 이사하기를 여섯 번 반복하는 동안 매년, 새해가 되면...그리고 2년 뒤, 조금 덜 낡고 방이 둘인 전세 6000만 원 아파트로 이사했다. 대출받고 이사하기를 여섯 번 반복하는 동안 매년, 새해가 되면 대출금을 얼마나 갚을지 계획을 세웠고 연말이면 얼마나 갚았는지 검토했다. 그리고 매달 엑셀파일에 대출금 갚은 것을 기록했다. 수학을 좋아했던 나는 이런 게 은근 재미가 있었다. 만 원 한 장 쓰는 것도 벌벌 떨며 아낀 돈으로 대출금을 갚을 땐 기분이 좋았다. 사실 다른 낙은 다 포기하고 대출금 갚는 낙으로 살았다. 그리고 보람도 있었다.
결혼 13년 차 2007년에 대출을 받아 경기도 내 집으로 이사했고 셋째를 낳았다. 양가 부모님과 형제들은 아무것도 없이 시작해서 집을 샀다고 칭찬해 주었다. 대출금은 남아 있었지만, 결혼 13년 차 만에 내 집에 들어가는 목표를 이뤄 내심 뿌듯했다. 하지만 새로 시작하는 젊은이들에게 우리처럼 살아라 라는 말을 못하겠다. 매달 "이번 달 대출금은 어떻게 갚냐?"며 한 숨 쉬고 보냈던 내 젊음의 수많은 순간들이 아깝다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 없기 때문이다.
어떤 이들은 가난은 불편한 것뿐이라고 한다. 그리고 다 갖추고 시작하는 것보다 살면서 하나하나 장만하는 삶이 더 값지다고 말한다. 물론 나도 예전엔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직장에 다니면서도 자기 몸 누일 방조차 구할 수 없다면 그건 세상이 잘 못 된 거다. 전세방 마련하느라 아등바등 살아야 하는 부부는 삶의 여유를 가지기 참 어렵다. 게다가 아이까지 있다면 좋은 부모 노릇하기가 더욱 어렵다.
집 문제는, 더는 개인들이 삶을 희생하면서까지 노력해서 돌파해낼 수도 없고 그럴 일도 아니다. 그 고통이 개인이 감당할 수 있는 한계를 넘어섰다는 생각이 든다. 이젠 사회가 해결 방안을 만들 차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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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기에 똥이 둥둥 뜨는 집에서 드는 생각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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