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업체 관계자가 부지런히 짐을 나르고 있다
연합뉴스
손가락을 다친 후 더 이상은 불안과 공포에 떨려 살고 싶지 않은 마음이 무럭무럭 자라나기 시작하였고, 남편과 의논 끝에 이사를 하기로 합의를 보았습니다. 평소 후덕하기로 친정어머니 같은, 무엇보다 이번 강도의 사태를 너무나 잘 아시는 주인아주머니에게 최대한 친절하게 설명을 하기로 하였습니다. 더 이상 이 집에서 살고 싶지 않다고 말이지요. 아직 전세계약기한이 남은 상태였기에 집주인 아주머니의 배려 없이는 손쉽게 이사를 할 수가 없는 상황이었거든요.
하지만 결론은 세입자인 우리가 집을 내놓고, 집이 나가면 그 전세금을 받아 이사를 가라는 것이었습니다. 집 내부 구석구석이 아직은 깨끗하다는 이유로 우리가 이사 들어올 당시에는 도배도 장판도 모두 생략한 채 이사를 들어 왔는데, 새로운 세입자가 이사 오면서 도배와 장판을 새로 해달라고 하면 우리 돈으로 해줘야 한다는 얘기까지 대놓고 하시는 집주인 아주머니는 더 이상 훈훈한 친정어머니가 아닌 것 같았습니다.
답답한 사람이 샘물을 판다는 옛말에 따라 하루라도 지체하고 싶지 않은 우리 쪽에서 먼저 움직일 수 밖에 없었습니다. 생활정보신문 등에 광고를 내고, 동네 곳곳 전봇대 등에 전단지를 붙이고, 전셋집을 찾는 문의전화에 최대한 친절하고 장황하게 설명을 하면서 새로운 세입자가 나타나기를 기다렸습니다.
아기 목욕까지 시켜주신 친절한 집주인 아주머니였는데... 그러던 어느 날, 우리가 살던 곳에서 근 한 시간 거리쯤에 사는 대학생 오누이에게서 문의전화가 왔습니다. 거리가 멀어 제때 와볼 수 없는 점을 감안하여 유선상으로 집 내부구조에 관한 상세설명을 부탁한다는…. 마치 도면을 들여다보듯, 대문을 들어서면서부터 집 안 곳곳을 돌아다니며 설명을 하였고, 이 집의 유일한 단점(?)인 가스보일러의 사용에 이르기 까지 열과 성을 다해 설명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드디어 새로운 세입자를 맞이 하였습니다. 아들 딸 많이 낳고 부자 되어 큰 집 사서 이사 가라던 주인아주머니의 덕담은 기억 속에 묻힌 채 우리는 첫 전셋집에서의 생활을 그렇게 마무리 지었습니다.
두 번째 전셋집에서의 생활 또한 평범하지 않았습니다. 옮겨온 두 번째 전셋집에서 아들아이를 낳았습니다. 산후조리를 도와줄 이 없이 혼자 낑낑대는 내가 안쓰러우셨던지, 갓난 아기를 목욕시켜 주시기도 하고 집주인 아주머니는 참 친절하게 대해주셨습니다.
그런데 우리 가족 나름의 시련이 제법 발생하였습니다. 남편이 실직을 했고, 창업을 하면서 부족한 자금을 전세금 일부로 충당했습니다. 전세금 일부를 되돌려 받아 월세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주인아주머니의 적극적인 도움을 받았습니다. 어찌나 고맙던지, 그해 겨울 보일러가 고장 나서 새것으로 교체했는데, 우리는 기꺼이 반반 부담을 하였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천년만년 살고지고!' 하였던 것인지도 모릅니다. 절대 날짜 한번 어기는 일 없이 매달 월세를 꼬박꼬박 드렸습니다. 오히려 하루나 이틀쯤 더 앞당겨서 챙겨드리기도 하고, 떡 한 접시, 케익 한 조각이라도 집주인 아주머니를 먼저 챙겨드리면서, 집주인과 세입자 그 이상의 끈끈한 무엇이 우리 사이에 있음을 의심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 은근한 관계가 끝이 난 건, 얼마간 집에 다니러 오신 시어머니 바로 앞으로 벽돌 한 장이 추락하는 사고가 나면서부터인데요, 마침 뇌수술을 마치고 회복차 우리 집에 기거하시던 어머니의 공포는 가히 극에 달할 지경이었습니다. 아직 수술자리가 아물지 않아 머리를 칭칭 동여맨 붕대마저 풀지도 않은 상황에서, 어머님 바로 앞으로 이층 벽을 장식하고 있던 벽돌이 떨어져 깨어졌으니요. 만에 하나 그것을 맞기라도 한 날에는 생각조차 할 수 없는 끔찍한 일이 벌어졌을 것임이 분명한 일입니다.
시어머니와 집주인과 사이의 한랭전선은 그날로부터 급격히 심각해지기 시작하였고, 어머님의 강력한 주장에 이사를 해야 하는 상황까지 발생하게 되었습니다. 보일러를 바꾸고 아직 한 해 겨울도 다 나지 못한 상황이었는데 말입니다.
이사를 가겠다는 말을 내뱉은 후로 집주인과의 관계는 빠른 시간 안에 사무적으로 변해갔습니다. 관계가 좋을 때에는 월세를 전해드리러 가는 길이 인정스러웠는데, 집을 내놓은 뒤로는 그동안 살면서 집안 구석구석 흠집 내둔 곳은 없는지 주인아주머니는 호시탐탐 관찰하고 지적했습니다. 그 집에서 또한 어렵사리 새로운 세입자를 구한 후 이사를 나올 수 있었습니다. 마지막 날까지 일할로 월세 계산을 완벽하게 다 하고 난 후에 말이지요.
겉도 속도 친정어머니 같은, 훈훈한 집주인이 돼볼 작정입니다그리고 네 번의 이사를 더 한 후 비로소 작으나마 아파트 한 채의 주인이 되었습니다. 네 번의 이사를 더 하는 동안, 총 네 군데의 집에서 세입자로 사는 동안 세입자의 처지는 늘 오분대기조였습니다. 특히나 아이들이 어릴 때는 집 안에서 마룻바닥을 뒹구는 일에도 늘 자유롭지가 않았습니다.
평생 팔리지 않을 것만 같은, 허름하기 짝이 없는 열몇 평의 전세 아파트에서도 하루아침에 집이 팔리면 거두절미 비켜줘야만 했고, 이사 들어갈 당시 장판과 도배를 새로 해달라 요구하지 않고서도 그 집에서 사는 내내 벽에 흠집 하나 내지 않으려 늘 신경을 곤두세워야 했습니다. 아이들이 맘껏 신나게 뛰어놀게 할 수만 있다면, 그런 친절한 집주인을 만날 수만 있다면, 하는 것이 염원이 될 지경이었던 것입니다.
이제는 나도 집주인입니다. 아직은 전세를 놓을 만큼, 매월 월세를 거둬들일 만큼 큰 집의 주인이 아니라, 그저 우리 가족 먹고살고 꾸려가는 달랑 아파트 한 채의 주인입니다. 하지만 이 다음 나이가 더 들어 전셋집, 월셋집의 집주인이 되면, 겉만 그런 것이 아닌 속까지 훈훈한 실제 친정어머니 같은 집주인이 되어볼 작정입니다. 전셋집 보일러를 교체해야 하는 시기가 오면 집주인이 알아서 척척 바꾸는 그런 집주인이 되어볼 작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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