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혈육을 잃은 현장인 금정굴에서 '빨갱이 가족'으로 60년을 인고해야했던 세월을 토로하고 있는 마임순, 이경순 유족 (2010년 9월)
이안수
희생자의 '부인'을 차지한 치안대, 야만의 '극치'그러나 고통은 희생된 이들만의 몫이 아니었습니다. 살아남은 이들의 고통 역시 참담할 뿐이었습니다. 차마 일일이 그것을 다 적어 내기가 고통스러운 사연들이 차고 넘칠 수밖에 없는 그들의 운명은 말 그대로 '한 많은 지난 세월'이었습니다.
사건 이후에도 일부 희생자 가족들은 생명의 위협을 받았으며, 치안대에 땅과 살림살이 등 재산을 빼앗겨야 했습니다. 또한 연좌제에 따라 희생자의 자식들은 취업하거나 육사 등에 진학할 수 없었고 늘 요시찰 대상자로 분류되어 감시를 받아야 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러한 피해 사례들은 희생자들의 부인이 당한 '성적 치욕' 앞에서는 차라리 무색해집니다.
고양시 덕이리에 살던 남편 박모씨가 금정굴에서 죽임을 당한 후, 그의 부인 역시 치안대에 끌려갔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는 그곳에서 강제로 자신의 남편을 죽인 치안대원의 첩이 되어야 했다고 박씨의 아들은 증언했습니다. 사건 당시 불과 6살이었던 박씨의 아들은 이듬해 자신을 돌봐주던 할머니 마저 돌아 가신 후, '고아 아닌 고아'로 살아야만 했던 지난 모진 기억앞에서 서럽게 울었습니다.
기막힌 일은 이뿐만이 아닙니다. 당시 치안대 대장이었던 김모씨 역시 억울하게 죽은 노모씨의 부인을 성적으로 괴롭혀 결국 고향을 떠나게 만들었으며 또 다른 희생자인 최모씨의 부인 이모씨 역시 자신이 겪은 참담한 일을 잊을 수 없다고 말합니다.
그가 경찰지소로 끌려간 때는 남편이 죽임을 당한 후 며칠이 지난 어느날 새벽 4시경이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경찰의 심문 내용이 너무나 기가 막혔다고 합니다. 자신에게 빨리 재혼을 하라는 경찰의 강요였던 것입니다. 남편을 죽인것도 모잘라 이런 말도 안되는 강요를 받은 이씨가 너무 억울하고 기가 막혀 끝내 답변하지 않자 경찰은 "왜 말 안하냐. 니 자식들 길러 (나에게) 원수를 갚으려 하냐. 2주 안으로 팔자 고쳐"라고 하면서 몽둥이로 마구 때렸다고 그는 증언합니다.
너무도 끔찍한 야만의 그때였습니다. 그러나 이같은 불법 행위에 대해 그 처리 결과를 확인하면 너무나 어처구니가 없어 입을 다물수가 없습니다. 고작 1명이었습니다. 그것도 이 사건 진짜 책임자인 당시 고양경찰서장 이무영이 아니라 하위직 경찰관 1명이었던 것입니다.
더구나 1950년 12월 22일 서울지방법원에서 '부역자 불법 처형'으로 사형 선고를 받은 그 역시 진짜 처벌 받았는지도 확인 할 수 없었습니다. 그가 사형을 집행받았다고 알려진 대구형무소의 기록을 확인한 결과 그가 수감되었다는 사실을 비롯하여 그의 사형 처분 역시 끝내 사실로 확인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너무나 '어처구니없는 사건'에 마찬가지로 '어처구니없는 결말'이었습니다.
10월 2일, '62회' 금정굴 희생자 위령제에 초대합니다어느덧 이 끔찍한 기억으로부터 62년이 지나가고 있습니다. 물론 그동안 적지않은 일들이 있었습니다. 지난 2007년 진실화해위의 결정으로 '금정굴 집단 학살 사건'이 경찰에 의한 불법 행위였다는 사실이 밝혀졌으며 이후 지난 8월 23일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 금정굴 유족들의 '국가를 상대로한 손해 배상 소송' 항소심 결정에서 원고 승소 판결을 받기도 한 것입니다. 적어도 국가기관과 법원에서 희생자와 유족들의 억울함은 분명하게 인정된 것입니다.
하지만 다시 현실로 돌아오면 사정은 그렇지 않습니다. 진실화해위가 권고한 사항이 전혀 지켜지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당시 진실화해위는 진상규명 결정을 내리면서 동시에 '금정굴 사건 희생자 유족들에 대한 국가의 공식적 사과'와 '임시 보관 중인 유해 영구 봉안' 그리고 이들을 추념하는 '평화 공원 설립' 및 '위령시설 설치 '등을 위한 기관에 권고했습니다. 하지만 2012년 현재 이같은 권고가 이뤄진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오히려 그 당시 이들을 가해한 측은 국가기관과 법원의 결정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희생자와 그 유족들을 빨갱이라고 매도하고 있습니다. 특히 지난 2010년 지방선거 당시 고양시민단체가 요구한 '금정굴 희생자를 위한 평화공원 건립'을 약속하며 야권연대 후보로 당선된 일부 시의원들은 이 약속을 지키지 않은 채 지금에 이르고 있습니다. 더 큰 문제는 도대체 언제 이 문제가 해결 될지도 알 수 없으며 이러한 세월만큼 이 억울한 유족들의 한은 더 쌓여가는 실정이라는 것입니다.
이에 '고양 금정굴 유족회'와 '고양시민사회연대회의'는 이들 희생자가 연행된 첫날인 오는 10월 2일 오후3시, '일산 문화공원'(미관광장)에서 사건 발생 후 62주기를 맞아 '고양지역 민간인 학살 희생자 합동 위령제'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고양시와 국가인권위원회 등이 후원하는 이 위령제는 지난 1993년 처음 거행된 후 올해로 꼭 20년째를 맞이하고 있습니다.
또한 위령제 외에도 지난 과거의 비극적 고통을 딛고 평화 도시 고양으로 거듭나고자 다채로운 행사도 함께 치러집니다. '2012 고양 평화예술제'라는 이름으로 준비되는 이 행사는 10월 2일부터 이틀에 걸쳐 매일 저녁 7시까지 위령제와 같은 장소인 고양 '일산 문화공원'에서 개최됩니다. 주요 행사로는 전시물과 참가자들이 직접 참여하는 평화 엑스포를 비롯하여 문화행사(상여 퍼포먼스, 평화 음악회, 풍물 대동제) 및 평화시민 걷기 대회 등으로 진행될 것입니다.
62년 전, 이념적 갈등으로 빚어진 한국 전쟁은 이제 더 이상 안 됩니다. 이념이 인간의 존엄성보다 우선할 수 없습니다. 다시는 이같은 비극적인 참상이 되풀이 될 수 없습니다. 그렇기에 수백억원의 돈으로 지은 '용산 전쟁기념관'보다 이처럼 억울한 죽임을 당한 희생자들을 기억하며 평화를 위한 교육을 위해서라도 '금정굴 평화공원'은 반드시 만들어져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평화를 위한 첫걸음이 될 것이라고 저는 강력하게 호소합니다.
끝으로 62년 전 그날, 한국전쟁 과정에서 '숨져간 모든 이들을 추모'하며 가족을 잃고 고통받은 그 '모든 유족에게 깊은 조의'를 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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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 운동가, 재야인사 장준하 선생 의문사 및 친일 반민족행위자의 재산을 조사하는 조사관 역임, 98년 판문점 김훈 중위 의문사 등 군 사망자의 명예회복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저서- 중정이 기록한 장준하(오마이북), 장준하, 묻지 못한 진실(돌베개), 다시 사람이다(책담) 외 다수. 오마이뉴스 '올해의 뉴스게릴라' 등 다수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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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m 구덩이 속 야만, 금정굴 추모공원으로 잊지 말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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