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차이나타운
윤솔지
심지어 에디슨은 노크도 없이 내 방 문을 불쑥 열고 '전기세를 내라, 통화 명세서가 나왔으니 본인이 쓴 것은 돈을 내라' 등 요구사항을 말하기 시작했고, 신경은 예민해질 대로 예민해졌지만 나는 소심했기에 쌓아두기만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물김치가 너무 먹고 싶었다. 한국인 식당에 가서 레시피를 알아낸 다음 차이나타운에 가서 재료를 잔뜩 사왔다. 재료는 많은데 물김치를 담글 통이 없어서 세숫대야 세 개 정도를 여기저기 집구석에서 찾아내서 깨끗이 씻어낸 다음, 들뜬 마음에 물김치를 완성하고 거실 구석에 놓아둔 다음 랩으로 덮어놨다. 거실에는 커튼이 없었던 지라 햇살을 받아 물김치는 발효가 잘되고 있었다.
그날도 여전히 에디슨이 문을 열고 심각한 표정으로 나에게 말했다.
"너, 거실에 저거 뭐야? 세숫대야에 있는 식물하고 물, 걔네 썩어가잖아. 거실에서 화장실 냄새 나잖아. 역겹다고! 저거 어서 치워.""뭐가? 아! 저거! 김치라는 건데, 저게 지금 발효가 되는 거야. 김치라는 음식은 항암효과에 최고야. 얼마나 몸에 좋은데. 저걸 꾸준히 먹으면 100살까지도 살 수 있어. 일본이나 한국사람들 장수하는 거 너 알고 있지? 다 그게 김치 덕분이야."무슨 생각이었는지 나는 일본까지 엮어서 과장을 했고 에디슨은 갸우뚱했지만 제발 물김치를 치워줬으면 하는 눈치였다. 그래서 이튿날 통 몇 개를 사와서 친구들에게 물김치를 나누어주고 통 하나에 내 것을 담아서 냉장고에 넣어두고 야금야금 아껴 먹고 있었다.
며칠이 지난 한밤중에 집이 소란스러웠다. 고국에 있는 에디슨과 리카르도의 친구들이 런던에 와서 일하면서 정착하겠다고 왔다고. 집을 구할 때까지만 넓은 거실에서 자겠다고 했다. 그들은 침낭도 가지고 왔다. 세상에! 남자 다섯 명이 굼벵이처럼 침낭 속에 들어가서 거실에서 뒹굴거리며 텔레비전을 틀어놓고 있는 그 상황이란! 게다가 다들 넉살도 좋고 인사성까지 밝아서 화를 내기도 민망한데 번뜩이는 생각이 났다.
'그래! 다들 잠들었을 때 물김치를 꺼내놓는 거야!'그래서 모두가 잠들었을 때 고양이처럼 살금살금 거실에 나가서 냉장고에 있는 물김치를 꺼내서 그들의 머리맡 선반에 뚜껑을 열어 올려 놓고 얼른 내 방으로 돌아와서 숨죽여 키득거리다 잠이 들었다. 선잠에 거실에 왔다 갔다 하는 소리, 자기네들끼리 뭐라 뭐라 하는 소리가 들리다가 이윽고 조용해지는 것까지 신경쓰면서, 내일이면 그들이 내 권리도 존중해주기를 희망하면서.
물김치 국물에 달려드는 '침낭 속 굼벵이들' 보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