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필 전 자민련 총재와 심대평 전 자유선진당 대표. 두 사람은 한시절 충청권 '맹주'로 불렸다. (자료사진)
자유선진당
깃발만 꽂으면 당선되던 시절이 있었다. 깃발 색깔만 보고 찍어주던 유권자들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1995년 3월 김종필 총재가 창당한 자유민주연합(이하 자민련)은 오랜 세월 동안 선거 때마다 녹색깃발로 출마한 후보를 국회의원이나 자치단체장으로 그대로 '꽂아주는' 괴력을 발휘했다.
경상도는 신한국당 또는 한나라당의 파란색으로 모두 덮였고, 전라도는 국민회의 또는 민주당의 노란색 물결이었으므로, 충청도 역시 한 가지 색으로 '앗쌀하게' 통일해줘야 '핫바지' 소리는 안 들을 거라 여겼을까?
공교롭게도 자민련은 파란색과 노란색의 혼합색인 초록색으로 당 깃발을 택했고, 충청도에서 초록색 깃발을 꽂고 입후보하면 즉시 고귀한 자리에 꽂히는 행운을 얻었다. 당으로서는 쾌거였고, 후보에게는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는 정계진출의 기회였다.
처음엔 창당 개업발이겠거니 했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개업 때 찾아온 손님들이 '꽂아주고 꽂히는' 맛을 잊지 않고 그 뒤로도 꾸역꾸역 몰려와 마침내 자민련은 충청도에서는 대박 정당이 되었다.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표 몰아주던 시절
지난 1995년 6월 27일 치러진 지방자치 선거에서 광역단체장 4명, 기초단체장 23명, 광역의회의원 86명을 당선시켰고, 1996년 4·11총선(제1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50석을 얻음으로써 제2야당의 지위와 함께 국회 운영의 캐스팅보트까지 거머쥐었다. 1998년 6월 4일에 치러진 지방자치제 선거에서는 광역단체장 4명, 기초단체장 29명, 광역의회의원 82명을 당선시켰다.
자민련에 대한 충청민들의 지지는 그야말로 묻지도 않고 따지지도 않는 전폭적인 지지였다. 후보 자질보다, 공약보다 우선한 것이 충청도 정당 소속이라는 것이었다. 묻지도 따지지도 않는 선거는 2000년에 와서야 비로소 묻고 따지게 됐다.
'2000년 총선시민연대'가 낙천낙선후보를 발표하였을 때, 그 명단에는 자민련의 많은 후보들이 포함되어 있었다. 사유는 거개가 부정부패 또는 지역감정 조장 발언 때문이었다. 총선시민연대의 낙천낙선운동 여파로 자민련은 2000년 총선에서 지역구 12석, 비례대표 5석으로 총 17석을 얻는 데 그치고 말았다. 4년 후인 2004년 총선에는 지역구에서 4석만을 확보하여 급격한 쇠락을 길을 걸었다. 그것으로 끝이었다.
이후 충청도 출신의 정치인이 자유선진당, 국민중심당 등을 창당했지만, 예전 자민련의 영화를 재현할 수 없었고 지방선거에서 승리하여 자치단체장이나 지역의회 의석 정도를 가져갈 뿐이었다. 충청도의 표심을 대변하던 초록색은 파란색과 노란색으로 나뉘었다. 이같은 색분화는 2004년 노무현 대통령 탄핵 직후 치러진 총선부터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