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많은 전월세 전단들
오마이뉴스
이럴 때면 이 나이에 아직도 월세를 살고 있는 내가 못나 보이고 수많은 집들 중에 내 집 한 칸 장만하지 못한 현실에 막막해 답답해진다. 게다가 올해처럼 전세 값이 계속 오르면 재계약을 해야 하는 내년 봄에는 또 어떻게 해야 할지.
내가 이 집에 월세를 살기 시작한 때가 어느새 10년이 되어 간다. 당시 남편의 사업이 부도가 나는 바람에 우리는 빚만 잔뜩 지고 모든 것을 내놓아야 했다. 그래서 전세로 살던 집을 줄여 어느 정도 빚을 갚고 월세를 택한 것이다. 또 한 가지. 그 때는 내가 집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을 했기 때문에 그 일을 계속하려면 살던 곳에서 해야 하기 때문이기도 했다. 계약했을 때는 월 50만 원이었는데 지금은 70만 원까지 올랐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이 집의 주인이 시골에 사는 노부부인데 관리를 딸이 맡아서 하고 있어 이사 걱정은 없었다. 또 내가 집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며 버는 돈이 월세의 서너 배는 되었으니 그렇게 큰 부담은 되지 않았다. 그때는 빚을 갚는 게 목적이었지, 내 집 장만은 꿈도 꾸지 못했었다. 그러다가 남편도 직장을 얻게 되고 나도 계속 일을 해서 빚도 조금씩 갚아가고 생활도 어느 정도 안정이 되자 다시 내 집 장만에 대한 꿈을 갖게 되었고 저축도 열심히 했다. 하지만 만만치 않은 세상살이 속에서, 빈 몸으로 내 집 장만은 말처럼 쉽지 않았다.
"그동안 전세값이 많이 올랐어요. 알고 계시죠? 시골에서 노인네들이 월세를 10만 원 더 올린다고 하시네요.""아니, 월세 말고 보증금을 올려주세요. 솔직히 저희도 어려운데 월세만큼은 밀리지 않으려고 기를 쓰고 있거든요. 밀리면 빚이 되니까.""아유, 노인네들도 그건 싫다네요. 월세 놓을 때는 다달이 들어오는 돈 때문에 놓는 건데. 그러니까 그렇게 알고 계세요."재계약 때마다 앓는 소리를 하고, 사정을 해봐도 언제나 주인이 원하는 대로 계약을 하게 된다. 그럴 때마다 나는 복덕방을 드나들고 교차로 같은 신문을 들여다보며 한동안 바빠진다. 월세를 그렇게 낼 바에야 차라리 은행에서 대출을 내서 집을 사고 말겠다는 치기어린 결심으로.
하지만 그것도 잠시뿐, 나는 다시 답답한 가슴으로 늘어난 월세로 더 빠듯해진 살림 걱정을 하게 된다. 은행 대출을 하려 해도 집값의 80%는 해야 하고, 전세자금 대출을 하려 해도 자격이 되지 않고, 결국 방법은 다세대주택으로 가는 방법뿐인데, 그러기에는 내가 일을 그만두어야 하니. 다시 제자리로 돌아와야 하는 이 막막함. 그러면서도 힘들고 어려웠을 때를 돌아보는 것으로 나만의 위안을 삼곤한다.
집 한 칸 장만하는 데 모든 걸 거셨던 엄마"야야, 뭔 일이 있어도 집 한 칸은 장만해야 헌다. 산꼭대기라도 좋고, 다 쓰러져가는 초가집이라도 내 집이 있어야 헌다. 그러니께 이 앙당물고 열심히 벌어서 집부터 장만혀. 그려서 젊어서 고생은 사서 한다는 말이 있는 거여. 알겄지?"엄마가 생전에 입버릇처럼 하셨던 말씀이다. 단발머리 깡충이며 아무 걱정 없던 그 때, 아버지는 시내에서 작은 구둣방을 하고 계셨다. 구두를 만드느라 거칠어진 손만큼이나 무뚝뚝했던 아버지는 정말이지 구두 만드는 일밖에 모르셨다. 덕분에 엄마는 손님을 상대하는 일은 물론 집안의 대소사까지 도맡아 하셔야 했다.
그 뿐인가? 넉넉지 않은 형편에 자식 넷을 키우다 보니 구둣방에 점원을 두는 대신 아버지 곁에서 소소한 일들을 거드셨다. 그래서 간단한 구두 수선은 물론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르자 아버지와 함께 구두 만드는 일도 하셨다. 또 한 푼이라도 더 벌기 위해 구둣방 앞에 좌판을 깔고 계절에 맞춰 과일이나 옥수수, 군밤, 군고구마 같은 것을 파셨다.
그런 엄마의 목표는 단연 집 장만이었다. 손에 쥔 것 한 푼 없이 집을 장만하기란 그 때나 지금이나 꿈같은 일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엄마는 그 일을 인생 최대의 목표인 것처럼 여겼고 그 목표를 이루기 위해 지독히도 돈을 모았다. 지금도 생각나는 것은 엄마가 목표를 이루어 처음으로 우리 집이 생긴 날이다.
빨간 벽돌집으로, 이제 우리 집이라는 엄마의 말씀에 잔뜩 기대를 하고 갔는데 막상 그 집은 내가 상상했던 것과는 달리 거의 꼭대기에, 그것도 대문도 없이 가게 문처럼 된 미닫이문으로 된 낡은 집이었다.
집안의 구조도 마치 굴처럼 어두컴컴하고 입구에서 방까지도 꼬불꼬불한 길로 이어진, 그야말로 집이라기보다는 창고 같은 느낌이었다. 그래도 엄마는 종일 싱글벙글 웃으며 시루떡을 이웃에 돌리고, 짐을 정리하고, 무척이나 좋아하셨다. 하긴 나에게도 좋은 점은 있었다. 더 이상 밖으로 돌지 않아도 되었고, 큰소리로 노래를 불러도, 두 발로 뛰어다녀도 누구 하나 눈치 주는 사람도 없어 내 세상이었다.
재계약할 때마다 졸이는 가슴, 간절히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