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의 가장 넓은 그늘은 집이다.
이민선
그렇다고, 뾰족한 수가 없다고 걱정만 하고 있을 수는 없었다. 난 두 아이의 아빠였다. 무언가 대책을 세워야 했다. 우선 집주인 의중을 떠 보기로 했다. 며칠 후 집주인에게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저 3층 사는 호연이 아빤데요. 그동안 별고 없으셨지요?""아~네 잘 지내고 있어요. 별 일 없으시지요?""네, 덕분에 잘 지내고 있습니다. 다른 게 아니라 수도 요금이 너무 많이 나와서요. 아무래도 어딘가 새는 것 같아요.""아~그래요, 내 조만간 한번 들를게요. 그리고 계약 기간 끝나가는 것 같은데… 부동산에 알아보니 전세금이 많이 올랐다고 해서, 내 그렇잖아도 전화를 하려던 참인데……."이 얘기를 들으며 올 것이 드디어 왔다는 생각에 눈앞이 캄캄했다. 집주인은 이미 전세금이 왕창 뛰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집이 낡았다는 걸 강조하기 위해, 집 상태가 부실하니 세를 올리지 말아 달라는 뜻을 넌지시 전달하기 위해 '수도배관'을 들먹였지만 소용이 없었다. 집 주인 의지는 확고했다.
"그럼 얼마나?""시세대로 하면 6500 정도는 받아야 하지 않을까 하는데…아~그리고 수도배관은 내 조만간 고쳐 줄게요."어이가 없었다. 6500만 원은 불과 3년 전만 해도 이 집(내가 살고 있는 집) 매매가격과 거의 같은 금액이었다. 그게 전세금으로 둔갑한 것이다. 다 쓰러져 가는 열댓 평짜리 연립주택 전세금이 6500씩이나 한다는 게 이해가 되질 않았다.
집주인과 전화 통화를 한 이후, 도저히 평정심을 유지할 수가 없었다. 자그마치 2000만 원을 올려 달라는 얘기였다. 부아가 벌컥벌컥 치솟았고, 이사할 걱정에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이도 저도 안 되면 더 싼 곳으로 이사할 작정을 하고 전세 시세를 알아보았다. 아뿔싸! 그 새, 불과 3년 9개월 만에 전세금이 얼마나 많이 올랐는지, 4500만 원으로 갈 수 있는 곳은 반지하나 월세 집밖에 없었다.
은행 이자보다 훨씬 부담이 큰 월세를 내면서 살 수는 없었다. 그렇다고 다시 반지하로 갈 수도 없었다. 몇 년 전, 반지하에 살다가 물난리를 겪었던 터라 길거리에 나앉는 한이 있어도 다시 반지하로 돌아가고 싶지는 않았다.
4500만원으로 갈 수 있는 곳은 '반지하'뿐알고 보니 전세금이 오른 이유가 옆 동네 아파트 재건축 때문만은 아니었다. 뉴타운 바람도 한몫했다. 뉴타운 지역이 된다는 소문이 일자 집값이 갑자기 크게 올랐고 덩달아 전세금도 펄쩍펄쩍 뛴 것이다. 집값을 올려놓은 건 개발 이익을 기대하며 몰려든 투기꾼들이었다.
뉴타운 지역이 된다는 소문이 나를 더 급하게 만들었다. 그 당시 서울 뉴타운 지역에 살던 주민 대부분이 쫓겨났다는 뉴스가 심심찮게 나오고 있었다. 원주민이 다시 자기가 살던 동네에서 사는 비율은 고작 20% 안팎이었다. 그러니 세입자는 말해서 무엇 하랴. 보나마나 뉴타운이 시작되자마자 쫓겨날 게 불 보듯 훤한 일이었다.
어쨌든 난 세상만 원망하고 있을 수는 없었다. 절망도 사치였다. 내 아이가 다니는 학교가 있고, 십 년 넘게 살아서 이미 제 2의 고향이 돼 버린 동네를 떠나지 않기 위한 뭔가를 해야 했다. 고민 고민 끝에 아예 집을 한 채 사기로 결심했다. 오두막 같은 집이라도 하나 있어야 쫓겨나지 않으리라 생각한 것이다.
눈 질끈 감고 경매를 해 보기로 했다. 경매로 나오는 집은 최소한 뉴타운 따위로 인한 거품은 없을 것이란 생각에서다. 막상 마음은 먹었지만 경매는 그리 만만한 게 아니었다. 복잡하고 위험했다. 부동산에 대한 기본 지식과 경매 절차에 대한 이해가 없으면 절대로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궁하면 통한다고, 난 놀라운 집중력을 발휘했다. 그 재미없는 경매 서적을 단 며칠 만에 독파했다. 그런 다음 경매로 나온 부동산에 대한 권리 분석을 시작, 딱 2주 만에 내가 원하는 집을 찾아냈다. 내가 원하는 집은 조건이 그리 까다롭지 않았다. 우리 동네에 있고 가격만 적당하면 그만 이었다. 내가 찜한(점찍은) 집은 지은 지 5년 밖에 안 된 새 집이었고 가격도 적당했다.
알고 보니 뉴타운 바람도 전세금 올리는 데 한 몫