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묻는다, 그래서 5.16은 '쿠데타'인가

[주장] 박근혜의 사과, 진정성 가지려면...

등록 2012.09.24 15:40수정 2012.09.24 1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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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을 90여일 앞두고 박근혜 후보가 아버지 박정희의 과거사를 또다시 사과했다. 5·16과 유신, 인혁당 등은 헌법가치를 훼손했다며 한 발 물러섰다. 얼마전까지만 해도 '구국의 혁명'이니. '최선의 선택'이니 하면서 5·16과 유신을 옹호하고, '두 개의 판결이 있다'며 희대의 사법살인 인혁당 사건을 '역사의 판단에 맡기자'고 당당히 말했던 그였다.

박근혜 후보 vs 김재원 대변인

우리는 먼저 지도자의 역사인식이 이렇게 쉽게 바뀔 수 있다는 것을 믿을 수 없다. 자신의 과거사 발언이 가져온 후폭풍, 들끓는 국민 여론을 잠재워보려는 면피용, 선거용 사과로 보이는 이유다. 더욱이 그의 5·16, 유신 옹호 발언으로 지지율이 속절없이 떨어지는 상황에서 나온 발언이라서 더욱 그렇다. 전날 밤 박근혜 후보의 대변인인 김재원 의원이 취중에 "박근혜 후보는 박정희 계승을 위해 나섰다"는 발언과 오버랩되면서 더욱 그의 진정성을 의심케 한다.

박근혜 후보는 아버지 때의 일로 피해를 입은 것에 사과한다고 말했다. 인혁당 가족에게도 그렇게 말했고, 김대중 대통령에게도 그렇게 말했다. 이번에도 그렇게 했다. 그러면서도 피해와 고통을 가져다 준 근본 원인, 즉 5·16과 10월 유신은 '구국의 혁명'이고 '최선의 선택'이라는 자신의 확신을 바꾸지 않았다. 이번에도 아버지 박정희는 경제발전과 국가안보를 위해 그렇게 했는데 그 일로 피해본 분들에게 사과한다는 것이다. 박근혜 후보의 화법은 늘 이런 식이다.

'아버지는 잘했다. 그러나 피해본 것은 사과한다.'

그래서 5.16은 '쿠데타'인가, '구국의 혁명'인가

다만, 이번 사과가 과거의 사과와 다른 점은 5·16과 유신이 헌정질서를 훼손했고, 정치발전을 지연시켰다고 말한 것이다. 그러나 국민들이 정작 듣고 싶은 말은 5·16과 유신을 지금도 '구국의 혁명', '최선의 선택'으로 생각하고 있는지 여부다.


이번 사과 기자회견으로 박근혜 후보의 진정성은 시험대에 올랐다. 그가 말하는 대통합의 정치, 미래로 나가자는 호소가 진정성이 있으려면 박근혜 후보와 새누리당은 다음의 점에 대해 분명한 입장을 말해야 한다.

첫째, 국민들은 박근혜 후보에게 5·16은 '쿠데타'인가, '구국의 혁명, 최선의 선택'인가를 지금 묻고 있다. 박근혜 후보는 여기에 답해야 한다. 이 문제를 "아버지의 무덤에 침을 뱉을 수 없다"는 말로 그냥 덮어두고 넘어가려고 해서는 안 된다.


둘째, 인혁당 사건으로 목숨을 잃은 분, 그 유가족을 비롯해 수많은 유신 피해자들의 희생과 고통에 대해 진정으로 사죄하고, 그들의 명예회복을 위해 앞장서는 것이다. 당장 '인혁당은 두 개의 판결이 있으니, 역사의 판단에 맡기자'는 말부터 거둬들여야 한다. 이번 사과가 진정성이 있으려면 논란의 발단이 된 자신의 인혁당 관련 발언에 대해 '내가 사실관계를 몰랐다. 법을 잘 이해하지 못했다'고 했어야 했다.
 
박근혜, 장준하 타살의혹, 정수장학회 문제 등 해결 협조해야

셋째, 지금 100만인 서명운동이 벌어지고 있는 장준하 선생의 의문사, 타살 의혹에 대해 당시 박정희 유신 국가권력, 특히 당시 박정희 대통령과 중앙정보부의 개입여부를 밝히는 일에 협조하는 일이다.

마찬가지로 1973년 '김대중 동경납치살해미수사건'의 실체를 밝히는 데도 협조해야 한다. '김대중 납치살해미수사건'은 당시 중앙정보부의 개입은 밝혀졌지만 박정희의 지시 여부는 이제까지 확증되지 않고 있다. 야당 대통령 후보까지 지낸 김대중을 납치, 토막살해, 수장하려 했던 사건이 최고권력자 박정희의 지시나 재가 없이 이뤄졌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

장준하 선생 타살의혹, 김대중 납치살해미수사건을 밝히는 데는 지금 생존해 있는 박정희 측근의 협조가 필요하다. 그들이 먼저 사건진상규명에 협조하도록 설득하는 것이 박근혜 후보가 먼저 할 일이다.

넷째, 헌납을 명목으로 강탈한 장물로 세운 정수장학회 문제이다. 정수장학회는 박근혜 후보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를 유지해 왔고 지금도 마찬가지다. 그의 사과가 진정성이 있으려면, 당장 정수장학회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정수장학회는 박정희의 경제건설과 국가안보와는 아무런 연관도 없는, 독재자 박정희의 재산강탈행위였고, 그 혜택은 딸 박근혜 후보가 가장 많이 누렸다.

박근혜 후보는 관용을 말할 위치가 아니다

박근혜 후보는 이번 회견에서 "이제는 증오에서 관용으로, 과거에서 미래로 나가자"고 말했다. 이 말이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를 한 자신에게 관용을 베풀어달라는 말인지, 역사의 화해와 시대의 관용을 이야기하는지 모호하지만, 박근혜 후보가 나서서 할 말이 아니다. 관용은 피해자의 몫이다.

아직도 울부짖는 유신의 피해자들, 수많은 의문사들이 남아 있다. '진실과 화해'는 과거사 정리의 원칙으로 정립되고 있다. 진실이 밝혀져 바로잡히지 않으면 화해도, 관용도 들어설 자리가 없다.

유신의 정점에서 아버지 박정희와 함께 유신에 몸 담아온 박근혜 후보는 가해자다. 가해자가 진실을 숨기고, 억지를 부리고, 과거를 묻으려고만 한다면, 관용도, 미래도 없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는 김대중 대통령을 보좌한 마지막 비서관이었으며, 지금은 김대중평화센터 공보실장 겸 대변인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글쓴이는 김대중 대통령을 보좌한 마지막 비서관이었으며, 지금은 김대중평화센터 공보실장 겸 대변인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박근혜 #박근혜 사과 #장준하 #최경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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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 대통령을 보좌한 마지막 비서관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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