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광복씨그는 20년 전 중증근무력증을 앓았다. 사업도 실패했다. 일주일에 250만 원이라는 병원비를 감당해야했다. 이런 역경을 딛고 그는 이제 두부달인으로 우뚝 서 있다.
송상호
아픈 일은 겹쳐서 온다했던가. 잘 다니던 직장을 접어두고 시작한 사업이 안 되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IMF 외환위기라는 악재가 겹쳤다. 어린 딸 둘과 아내를 책임져야 하는 광복씨에겐 앞이 보이지 않았다. 과도한 스트레스가 병을 불러온 게다.
희귀병이라 의료보험 혜택도 받지 못했다. 20여 년 전 당시, 1주일에 250만 원이나 병원비로 나갔다. 자신의 힘으로 감당하지 못해 주위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처절하리만큼 힘들 때 내밀어준 그 나눔의 손길이 그나마 그 가정을 붙들었다.
광복씨는 주저앉아 있을 수 없었다. 살아야 한다, 아니 살아남아야 한다는 절박감이 있었다. 나 하나가 아니라 나의 가정이 살아남아야 한다는 이중고가 있었다. 그렇게 시작한 게 두부 가게다. 대학 기계과 출신, 기계계통 품질관리과 직장, 유사 계통의 사업 등을 하던 그에겐 전혀 생소한 분야다. 하지만, 그에겐 문제가 되지 않았다. 아니 감히 문제 삼을 수 없었다.
"여기서 반드시 일어서리라""처음엔 노점을 1년 했어요. 새벽 3시 30분에 일어나 두부와 묵을 만들었죠. 낮엔 노점을 통해 팔았고요. 그건 순전히 나 나름의 홍보방식이었어요. 한 번 먹어본 사람들을 입소문으로 끌어들이려는 전략이었죠."
그의 말을 듣고 있으니 입이 절로 벌어진다. 아까 근무력증이라 하지 않았는가. 쉽게 피로해지는 병이라는데, 어떻게 그게 가능했을까. 약을 먹어도 사망에 이른다는데, 아마도 그는 죽을 각오를 했나보다. "여기서 일어서리라. 반드시 성공하리라" 이렇게 하루에 열두 번도 그는 되뇌었다.
노점 1년을 하니 생소해 하던 사람들도 점차 두부를 사갔다. 입소문이 퍼졌다. 그 후부터 본 가게로 돌아와 10년을 더 그렇게 고생했다. 기상시간 오전 3시 30분, 취침시간 오후 10시 30분. 하루 19시간을 쉬지 않고 일만 했다. 명절 빼고 거의 매일 그렇게 했다. 친구도 안 만났고, 술과 담배도 끊었다. 오로지 그 일에만 매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