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 앞에서 1인 시위 하는 사진. 필자입니다.
현대차 비정규직 조합원
저는 1964년 강원도 평창군 대상리라는 산골에서 태어났습니다. 두분다 문맹이셨고요. 화전민 출신이지요. 어머니 이야기로는 먹지못해 입이 돌아가고 정신이 혼미해 지기도 했다합니다. 찢어지게 가난한 이란 표현이 맞을 거 같은 궁핍한 생활을 한 가정에서 태어났다고 보면 될거 같습니다. 그 산속에서 화전민으로 생계를 유지하지만 먹고살기 어려우니 단양 삼곡으로 가서 살다가 다시 제천으로 가서 살기도 했답니다. 그러다 1970년대 제가 6살 무렵 울산으로 이사를 내려오게 되지요. 울산에 대형 공장이 많이 들어서니 거기가면 먹고살수는 있을거라는 정보를 들었나 보더라고요.
두분다 무식하니 뭐 돈많이 벌수있는 직장을 얻을수 있었겠나요? 허구헛날 놀음과 술에 쩔어사는 아버지. 폭행을 당하면서도 자식들보니 차마 도망도 못가고 억지춘양식으로 사시는 어머니. 우리 가정은 그랬습니다. 월세를 몇개월째 못주어 쫓겨 나기도 많이 했다네요. 무식하고 가난한 부모 밑에서 저도 무식하게 자랐지요. 옷은 빨지 않아서 시커멓고 속엔 이가 드글거렸지요. 물이 귀해 몸도 씻지 못해 머리엔 이가 기어다니고 꿰제제하니 그런 어린시절을 보냈습니다.
마침, 국민학교는 의무교육이라 한글의 원리도 잘 모르면서 덧샘,뺄심도 못하면서 나누기 곱하기,분수는 더 못하면서,글도 제대로 읽지 못하고 여러가지 과목 하나도 이해 할수도 없었으면서도 뻔질나게 학교 등교를 잘하니 졸업장은 주더라고요. 1979년 부터던가요? 만약에 중학교를 시험치고 들어 갔더라면 저는 국졸이 전부였을겁니다. 운좋게도 다시 중학교까지 의무교육이 되어서 입학금만 내면 중학교를 다닐수 있게 되었습니다. 아버지는 공부배워 뭐하냐며 못가게 했지만 어머니는 까막눈이라도 면해야 한다면서 아버지에게 혼이 나가면서도 교복과 책,학용품을 구해주셔서 중학교 입학이 가능했습니다.
당시 새로 생겼던 현대중학교에 배정받았습니다. 현대중학교는 현대중공업 대표였던 정주영 씨가 만든 학교였습니다. 첫 학생 입학이니 정주영 씨가 직접 와서 한말씀 하고 가셨는데 저는 입학식 때 운동장에 모여있지 않았습니다. 입학식날 교복을 입고있지 않았거든요. 교복 안입고 있으니 입학식에 참석말고 교실에 남아 있으라고 담임이 그랬지요. 저는 교실에서 입학식 하는 풍경만 바라볼 뿐이었습니다. 교복은 2주 후에 어머니가 사다 주셔서 입을수 있었습니다.
중학교 공부는 더 어려웠습니다. 한자도 있고,영어도 있었습니다. 산수도 못하는데 수학이라는 제가 보기엔 너무도 어려운 글자들이 가득한 책이었습니다. 중학교도 아는게 없으니 공부는 꼴지를 면치 못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등교는 용감하게 잘했습니다. 3년간 그렇게 했더니 초등학교 수준도 못되는 저에게 중학교 수준 공부마치고 졸업한다며 졸업장을 주었습니다. 고등학교는 의무교육이 아닌가 봅니다. 시험을 치루었습니다. 체력장도 했고요. 체력장 시험 20점에 110개만 맞으면 현대공고 들어갈수 있었다는데 제 이름은 합격자 명단에 없었습니다.
"창기야 앞으로는 고등학교 졸업장은 있어야 회사 들어가기도 쉽단다. 우짜노."
이웃에서 많이 걱정들 하셨지만 어쩔수 없었습니다. 공부머리가 안되는걸 어쩌겠습니까? 공부는 잘 외우면 되는데 저는 그 외우는 기능이 되잖았습니다. 간단한 영어단어 하나도 잘 외우지 못했습니다. 잘 외우는 사람이 똑똑한가 봅니다. 눈썰미가 있고, 일머리도 있나 봅니다. 잘 외우지 못하는 저는 시험본다는 말만 들으면 겁부터 납니다. 잘 외우는게 안되다보니 일머리도 없고,눈썰미도 없나 봅니다. 사회 생활 하는데 참 불편한게 많습니다. 제 가방줄이 거기서 끝나느냐? 아닙니다. 중학교를 무사히(?) 졸업한 저는 현대중공업에 사환으로 들어가 일했습니다. 요즘은 그런 일자리가 있는가 모르겠지만 그때는 있었습니다. 사환은 사원들의 잡심부름하는 어린 노동자 였습니다.
사환이라 월급은 얼마 안되었지만 재미가 있었습니다. 사무실에서 근무했거든요. 그때는 청사진이라고 암모니아수에 접촉 시키면 색이 시퍼렇게 변하는 종이가 있었는데 조선소의 설계도가 다 그렇게 청사진으로 구워 사용하던 때였습니다. 청사진 구워오기,복사하기,은행갔다오기,우체국 업무 같은 일을 맡아 했었습니다. 1980년 초, 일하면서 배우고 배우면서 일하자는 구호가 많이 들리던 때였습니다. 그래서 그렇게 중학교 마치고 사환으로 취직한 사람들에게도 배움의 기회가 주어졌습니다.
현대그룹 대표였던 정주영 씨는 울산 동구지역에 여러 학교를 세웠습니다. 제가 1회로 졸업한 현대중학교도 그중 하나고요. 현대고등학교,여고도 지었습니다. 그리고 현대공업고등학교도 세웠습니다. 그 현대공고에 야간학급이 만들어졌습니다. 사환으로 다니는 어린 노동자에게 기회가 부여되었습니다. 아침 7시까지 출근해서 오후 6시에 근무를 마치던 시절이었지만 사환은 오후 4시 30분이면 마치고 야간학급에 공부하러 갔습니다.
1년후 저도 현대공고 야간특별학급에 입학했습니다. 야간특별학급엔 사환뿐 아니라 생산직 사원도 많았습니다. 현대중공업,현대자동차 생산직 사원도 많았습니다. 저보다 나이 많은 형님들이었습니다. 중학교 때는 수업시간에 불려나가 문제 못풀면 손바닥을 맞곤 했는데 야간특별학급은 나이 많은 사람들이 많아 그런가 교사들이 때리는 일이 없었습니다. 그게 참 좋았습니다. 공부 못해도 맞지 않으니 그보다 좋을순 없었습니다. 고등학교 교과서 보니 머리가 어질했습니다. 하얀건 종이고 까만건 글씬데 무슨 내용이 쓰여 있는지를 이해할수 없었습니다. 그래도 용감하게 등교는 잘했습니다.
3년후, 내용을 한가지도 습득한게 없었는데도 졸업장을 주었습니다. 기분 좋았습니다. 초등학교 수준도 못되는 머리속을 가졌는데도 고등학교 졸업장이 생기다니요. 어떤 형님들은 공부를 잘했습니다. 그분들중 몇몇분은 대학에 진학하기도 했습니다. 공부 잘하는 사람들 보면 참 부럽습니다. 저는 공부하는 머리와는 거리가 먼 뇌 구조를 가졌나 봅니다.
고졸, 졸업장은 위력을 발휘 했습니다. 실력은 없었으나 그 고졸, 학력인정이 고졸이 아니면 들어갈수없는 일자리를 제공해 주었습니다. 그렇게 2000년 7월 현대자동차 울산공장 사내하청업체에 들어가 일하게 됩니다. 2004년에 불법파견 문제가 터졌습니다. 제 짧은 가방줄로 보아도 이건 아니다 싶었습니다. 비정규직 노조에 가입하고 불법파견 정규직화 투쟁에 동참했습니다. 2009년 말 업자가 다시 바뀌면서 노조탈퇴해야 써준다 했습니다. 그래서 결혼도 하고 가족의 생계가 달린 문제가 그나마 있는 직장 잃으면 안된다 싶어서 비정규직 노조원에게는 미안하지만 탈퇴했습니다. 일자리 계속 유지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그것이 실수였는지 모릅니다. 2012년이 들어서면서 제 일자리가 사라진다 했습니다. 공정을 들어내고 다른 공정이 들어선다고 했습니다. 정규직 노동자는 1년 유급휴직 할것이고 하청노동자는 모두 정리해고 될것이라 했습니다. 노조를 탈퇴해버려서 어찌 할바를 몰랐습니다. 3월 초, 하청업자는 정상화 되면 다시 부르겠다는 말과 함께 음식점에 우릴 대려가 음식을 시켜놓고 사직서에 서명하라 했습니다. 서명 안하면 한달치 위로금이 없다고 했습니다. 달리 방법이 없었습니다. 10년간 정말 열심히 일했는데 쫓겨날까봐 휴가 내고 싶어도 안내고 일했었는데 소용없었습니다.
정리해고 당한지 2년이 넘었습니다. 그동안 여러가지 일이 생겼습니다. 지난 2월 23일엔 대법원에서 현대차가 불법파견 주식회사라고 최종판결 나기도 했습니다. 희망이 생기나 했는데 현대차는 3000명 신규채용 안으로 마무리 지으려나 봅니다. 현대차는 노무관리자와 하청업자를 시켜서 노조탈퇴하고 집단소송 취하하면 신규채용 시켜주겠다며 꼬시러 다닌다고 합니다. 그것도 조합원이 노조에 신고를 해서 알게되었습니다. 현대차에서 내놓은 안이 통과될 경우 비노조원만 좋습니다. 지난 2004년부터 현대차 불법파견 투쟁에 나선 수백명의 노동자는 외면당합니다. 해고자 복직은 물건너 갑니다. 체불임금 받을수 있는 조건이 사라집니다.
검색해보니 대권주자들은 모두 대단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재산도 많았습니다. 머리가 똑똑했습니다. 생산현장에서 노동이라곤 해본일이 없는 대권주자들. 그들은 지금 현대차 비정규직 노동자가 처한 현실을 알고나 있을까요? 12년간이나 불법파견되어 노동착취 당해온 비정규직 노동자 현실을 이해할까요? 비정규직이 울산 현대차 뿐이겠습니까? 전국에 900만 비정규직 노동자가 있다고 합니다. 같은 일을 하면서도 절반의 임금을 때먹혀야하는 비정규직. 일용직,임시직,기간직,계약직...... 우리나라에 차별받으며 절망속에서 생활하는 비정규직 노동자가 그리 많다는 사실을 문재인 후보,안철수 후보,박근혜 후보는 알고나 있을까요?
덧붙이는 글 | 변창기 기자는 2012 <오마이뉴스> 시민기자 대선특별취재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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