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991년 5월 당시 <조선일보>에 실린 김씨와 강기훈씨의 필적. 가운데 붉은 테두리 안이 고 김기설씨 글씨이고 위쪽이 강기훈씨 필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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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묘한 일들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김기설의 분신 자결 후 공안당국으로부터 "잇따른 분신 사건에 배후가 존재한다"는 말이 흘러 나오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박홍 서강대 총장 의 밑도 끝도 없는 "죽음을 부추기는 어둠의 세력이 있다"는 말이 있은 후 이른바 '분신 배후설'은 진짜인것처럼 번지기 시작했다. 심지어 "운동권 내부에서 제비뽑기로 분신 순서를 정한다"는 어처구니없는 말도 진짜처럼 돌았다. 감방에 있던 재소자들 역시 나에게 진짜냐며 은밀히 물어올 지경이었다.
처음엔 이러다 말 것이라 여겼다. 그런데 매일 매일 조금씩 형태를 달리하더니 이번에는 김기설이 분신하는데 이 유서를 대신 써준 사람이 있어 검찰이 수사 중이라는 보도가 흘러나왔다. 이른바 '유서대필 사건'이 정식으로 세상에 고개를 내민 것이다.
유서대필 사건을 자세히 들여다 보면 이 사건이 얼마나 엉터리인지 금방 알 수 있다. 당시 검찰은 이 사건 범인이 누구이든 상관하지 않았다. 그저 유서를 대필해줬다는 천하의 파렴치범이 운동권에 있다는 것만 입증하면 그만이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처음엔 전민련 동료인 임아무개를 상대로 조작하려다 너무 무리하자 그 다음에 대상으로 삼은 이는 김아무개였다. 그러다가 검찰이 최종적으로 대상으로 삼은 이가 바로 당시 전민련 총무부장이었던 강기훈이었다. 그렇게 조작된 사건이기에 재야에서는 이 무리한 검찰의 조작이 끝까지 갈까 의심하는 이들이 적지 않았다.
한편, 많은 이들에게 알려지지 않았지만 이 시기 유서 대필 조작 기도는 또 하나가 있었다. 1991년 5월 10일 전남대에서 분신 자결한 노동자 윤용하의 죽음을 둘러싼 음모였다. 당시 공안당국은 초등학교만 졸업한 노동자 출신의 윤용하가 노태우 정권의 유서 대필조작 음모를 비난하는 유서를 쓰고 분신 자결하자 그의 형에게 접근했다.
이어 경찰은 윤용하의 형에게 "아무것도 모르는 노동자 출신인 동생이 뭘 알고 분신했겠냐"며 "우리 말대로 하면 잘해 주겠다. 대학생들이 당신 동생에게 술을 많이 먹여 만취하게 한 후 기름을 부어 죽이고 그 유서도 학생들이 대신 써준 것이라고 형이 기자회견을 하자"며 회유, 협박했다는 것이다. 이후 윤용하의 형은 이들의 눈을 따 돌리고 도망쳐 강경대 범대위를 찾아와 이를 폭로했다.
'아니땐 굴뚝에 연기날까'라는 속담이 있다. 여전히 일부에서는 김기설의 분신 과정에서 강기훈이 뭔가 역할을 했으니 이런 일을 당하지 않았겠냐는 의혹의 눈초리를 거두지 않는 이들도 있다. 하지만 윤용하 사건에서 보듯 당시 노태우 군사정권은 권력 유지를 위해 필요한 사건을 조작해서라도 만들어낸 것이다. 완성된 사건이 바로 '강기훈 유서대필 조작'이었다.
사건 발생 21년, 사법부의 부도덕은 계속된다그 후 감옥에서 석방된 나는 '유서대필조작 강기훈 무죄석방 공동대책위원회'를 찾아갔다. 당시 전민련 인권위원장이었던 서준식 선생이 집행위원장을 맡고 있던 그곳에서 나는 간사로서 첫 인권 운동에 발을 디뎠다. 그리고 그곳에서 일하면서 나는 이 사건에 대해 더 많은 진실을 알게 되었다. 무엇보다 김기설이 죽기 전 사람들과 마지막에 나눴다는 말을 전해 듣고 다시 한번 그의 죽음에 고개를 떨구었다.
김기설이 분신 자결하던 날 새벽 1시경, 김기설이 써 둔 유서를 우연히 발견한 동료들이 김기설에게 쓸데없는 생각하지 말라고 적극 설득하면서 스스로 유서를 찢어버리라고 요구했다고 한다. 그러자 김기설은 자신이 관여했던 두 가지 사건을 언급하며 "그들에게 아무것도 해준 것이 없어 미안해서 그런 것"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하나는 작업 과정에서 유해물질에 노출된 원진레이온 노동자들이 '산업 재해'로 죽어가고 있는데 이들에게 힘이 돼주지 못한다는 미안함이었고, 다른 하나는 속초 동우대학 사태 당시 어린 학생들을 보호해 주지 못했다는 무력감이었다고 한다. 그래서 김기설은 자신이 가진 유일한 생명을 던져 이 부조리한 세상에 '큰 고함'을 남기겠다는 극단적인 생각을 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김기설에게 "살아서 싸워야지 왜 죽냐"며 야단도 치고 화도 내며 거듭 거듭 설득했다고 한다. 그러자 김기설은 자신이 쓴 유서를 스스로 찢으며 마음을 바꿨다면서 사람들을 안심시킨 후 이내 같이 술을 마셨다고 한다. 그러던 김기설이 갑자기 "잠깐만 전화 한 통 하고 오겠다"며 대학로의 포장마차를 나갔는데 그렇게 나간 김기설은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 불길한 마음에 일행들은 정신없이 김기설의 행방을 찾았다. 그리고 그렇게 찾던 김기설의 행방을 알게된 것은 그로부터 약 3시간 후인 새벽 6시, 서강대 옥상에서 분신 자결했다는 소식이었다.
이런 김기설의 분신 항거에 대해 당시 노태우 군사정권은 윤용하의 그것처럼 터무니없는 조작을 했다. 하지만 이 말도 안 되는 사건은 대한민국 법정에서 유죄가 되었다. 진실을 밝혀줘야 할 법원마저 이 말도 안 되는 사건에 정당성을 부여해 준 것이다.
이같은 법원 판결에 의해 끝내 강기훈은 동료에게 잘 죽으라고 유서를 대신 써 준 '세계 최고의 파렴치범'이 되었고, 반면 김기설은 유서 하나 제 손으로 쓰지도 못하고 죽어버린 '세계 최고의 바보'가 되고 말았다. 따라서 이 거지같은 판결 앞에서 강기훈이 받은 마음의 상처는, 그래서 길이와 깊이로는 잴 수 없을 만큼 고통스럽고 분하며 억울한 '인격 사형'이었다.
드러난 진실, '유서는 김기설의 필체 맞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