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집2천장을 떠받치고 있던 구조물 중간이 끊어진 채 반토막 나있다.
김인철
두세 시간이면 다 될 것 같았는데 막상 시작하고 보니 하루, 아니 이틀은 족히 퍼내야 할 분량이었다. 게다가 흙을 퍼낼 때마다 천장에 남아 있던 흙들이 후두두 흘러내렸다. 천장이 더 내려앉았다. 오전이지만 햇볕이 따가웠고 삽질을 서너 번만 해도 땀이 비 오듯 쏟아졌다.
"오후에 형도 내려온단다."형이 내려온다는 소식을 전하는 어머니의 표정에 화색이 돌았다. 흙은 퍼내도 퍼내도 줄지 않았다. 산처럼 쌓인 흙더미에 숨이 막히던 나도 살 것 같았다. 사실 나는 이런 일은 서툴렀다. 매일 아이들하고만 지내니 그럴 법도 하다. 반으로 쪼개진 천장 구조물을 어떻게 들어올려야 할지 막막했다. 삽질도 몇 년 만에 해보는 것 같았다. 서툴고 더디지만 쌓였던 흙은 조금씩 줄어들기 시작했다. 막내는 이장님 댁에서 빈 수레 하나를 빌려 오더니 천장에서 떨어져 나온 썩은 나무며 창고의 잡동사니를 실어 나르기 시작했다. 웃집 고모부가 몸이 불편한데도 수시로 오가면서 흙더미 치우는 것을 도와주셨다.
하루 세끼 밥만 해줘도 자식들에겐 남는 장사"한 2년만 더 버텨 보려고 했는데. 노령연금이랑 국민연금 나오면 너한테도 덜 짐이 될 것 같고..."30년 가까이 시골 생활을 하셨던 분이 갑갑한 도시생활을 견딜 수 있을까. 걱정도 앞서지만 아버지 묘만 아니면 이제 딱히 이곳에 남겨 둘 미련은 없었다. 서울에 이모 세분이 살고 계시기에 오히려 당신이 왕래하면서 지내시기엔 더 좋았다. 어머니도 어느덧 요양 보호사 육년차셨다. 기력만 되신다면 도시에서도 충분히 작은 아들에게 의지하지 않고 살 수 있을 분이다. 어머니는 '하루 세끼 밥만 해줘도 자식들에겐 남는 장사'라는 큰이모의 말을 수차례 반복하셨다. 일단 올라 가면 무슨 수든 생길 것이다. 정작 문제는 막내지만.
차를 가지고 온 덕분에 김제역까지 형을 마중 나갔다. 어머니도 모처럼 아들이 운전하는 차 좀 타보자며 막내와 함께 차에 올랐다. 부안덕이 주말만 되면 큰아들 차를 타고 읍내로 외식하러 가는 게 항상 부러우셨단다.
고모부는 어머니에게 아랫마을 김씨 아저씨에게 집수리 좀 부탁해보라고 하셨다. 목수일을 오래 하셨던 김씨 아저씨는 한번 훑어 보시더니 집에서 연장을 몇 개를 챙겨 오셨다. 그리고 무너진 천장을 떠받칠 두꺼운 원목을 2개 정도 구해오라고 하셨다.
다행히 이장님 댁 뒤편에 버려둔 두꺼운 원목이 있었다. 새로 지은 이장님 댁은 너무나 예쁘고 아름다웠다. 형과 나는 원목을 어깨에 메고서 집까지 날랐다. 오전부터 흙을 퍼 나르느라 기진맥진하던 나는 어깨가 끊어질 것처럼 아팠다. 김씨 아저씨가 시키는 대로 원목을 자르고 무너진 천장을 세우고 그 위에 기둥을 덧댔다. 어두워지기 전에 원목을 기둥으로 세우니 폭삭 내려앉은 천장 구조물이 마침내 제자리를 찾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