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명의용군 사건혁명의용군 사건에 연루된 사람들이 받은 형벌입니다. 특이하게도 최고 책임자 서세중은 무죄를 선고받았습니다. 나이가 많아서 무죄를 받았다네요.
주철희 역사학자 제공
국가폭력에 맞선 '최능진'의 아들이 정수장학회 이사장?"1948년 10월 19일 '여순사건' 발생 20일전 '혁명의용군'이 터졌다. 국가는 5월 10일 초대 국회의원 선거가 치러질 당시 이승만과 동대문 갑구에서 맞대결을 벌인 최능진을 '혁명의용군' 사건의 책임자라고 발표했다. 이 사건은 이승만과 국가가 최능진을 '빨갱이'로 몰아 죽이려 조작한 최초의 국가폭력 사건이다" 이승만 정권의 이러한 국가폭력은 박정희 시대로 그대로 전이되었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이승만은 전쟁이 한창이던 1951년 2월 11일 경북 달성군 야산에서 최능진을 처형했는데 죽음을 앞두고 그가 쓴 유서를 보면 역사의 아이러니를 보는 듯하다"고 말했습니다. 왜냐하면 "최씨가 오남매와 아내에게 쓴 유서를 보면 '필립'이라는 인물이 나오는데 그가 요즘 유력한 대선 후보로 떠오른 박근혜 후보와 관련된 정수장학회 이사장인 최필립이기 때문이다"고 말했습니다.
덧붙여 "국가폭력을 마음껏 휘두른 이승만에 의해 아버지가 죽었는데 그 아들이 국가폭력의 대를 이은 박정희 딸과 손잡고 있으니 역사는 참 짓궂다"고 꼬집었습니다. 또 그는 강의에서 "여순사건 이후 전남동부지역은 피바람이 불었는데 대학살의 정당성을 '빨갱이 처단'에 두었다"고 말했습니다.
더 기가 막힌 일은 '최능진'과 '오동기'는 일제강점기시절에 독립운동을 하다가 옥고를 치른 독립투사들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들은 지금도 독립유공자로 지정을 받지 못하고 있다고 합니다. 누구를 탓해야 할까요? 그래서 강사는 '나쁜 국가 착한 국민'이라는 제목으로 이번 강의를 하고 있습니다.
그의 강의를 계속 들었습니다. 그는 "여순사건 이후부터 현재까지 '빨갱이'라는 말은 주홍글씨처럼 새겨져 많은 사람들 가슴을 아프게 했고 지금도 그 상처는 이어져 사람들을 괴롭히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한번 새겨진 '빨갱이'라는 주홍글씨가 얼마나 질기게 사람을 따라 다니는지 몇 곡의 노래를 통해 설명했습니다.
'왜놈이 물러갈 땐 조용하더니... 의견이 안 맞으면 따지고 살지'부용산 작곡 안성현 / 작사 박기동부용산 오리 길에 / 잔디만 푸르러 푸르러솔 밭 사이 사이로 / 회오리 바람 타고간다는 말 한 마디 없이 / 너는 가고 말았구나피어나지 못한 채 / 병든 장미는 시들어지고부용산 봉우리에 / 하늘만 푸르러 푸르러주철희 역사학자는 강의에서 '빨갱이로 낙인 된' 오래전 노래를 들려주었습니다. 첫 곡은 '부용산'이라는 노래였습니다. 강사가 전해준 사연은 이렇습니다. "이 노래의 가사를 쓴 사람은 박기동이라는 인물이다, 여수시 돌산읍 둔전리에서 태어나 벌교에서 살았는데 자신의 여동생이 자식도 없이 스물네 살 꽃다운 나이에 폐결핵으로 죽자 부용산에 동생을 묻고 내려오면서 한편의 시를 썼다"고 말했습니다. 시는 노래가 되었고 사람들 사이에 불렸다고 합니다.
이어, 그는 "가사 어디를 찾아봐도 빨갱이를 찬양하고 국가를 전복하려는 내용이 없는데 여순사건 이후 산으로 들어간 사람들이 이 노래를 불렀고 노래를 작곡한 안성현이 월북하면서 박기동의 인생은 고문과 감시와 고통의 연속이었다"고 말했습니다. 단지 동생을 그리워하며 쓴 시 한편이 한 사람의 인생을 어긋나게 했군요.
강사가 두 번째로 들려준 곡은 '여수야화'라는 노래였습니다. 얼핏 들으면 요즘 한창 뜨는 '여수밤바다'와 비슷한 서정적 제목입니다. 하지만 그 내용은 아름답지 않습니다. 총 3절로 만들어진 노래인데 마지막 절을 보면 다음과 같은 의미심장한 내용이 나옵니다.
'왜놈이 물러갈 땐 조용하더니/오늘에 식구끼리 싸움은 왜 하나요/의견이 안 맞으면 따지고 살지/우리 집 태운 사람 얼굴 좀 보자'(작사 : 김초향, 작곡 : 이봉룡, 노래 : 남인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