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쪽이 정상적인 벼, 오른쪽이 백수피해를 입은 벼다. 백수피해를 입은 벼는 처음에는 색깔이 흰색으로 변했다가 검정색으로 다시 변색된다.
김동환
"농사는 안 지어 봤겠지만 두 벼가 뭔가 다르다는 건 알겠지? 이래서는 수확이 안 되는 거거든. 바보가 아닌 이상 누가 이런 걸 사가."추석을 열흘 앞둔 19일 전북 김제시 부량면의 한 논두렁. 검게 변색된 벼 이삭은 농부의 손바닥에 부딪힐 때마다 힘없이 벼 낟알을 토해냈다. 떨어지지 않고 이삭 줄기에 붙어있는 것들은 낟알이 채 맺히지도 않아 쭉정이가 된 부분이었다.
볼라벤, 덴빈, 산바. 8월 말부터 전국을 휩쓴 세 차례의 태풍에 백수 피해가 심각한 수준이라 농가의 시름이 깊어지고 있다. 백수 피해란 심한 바람으로 수분이 말라 벼가 익지 않는 현상을 말한다. 전북의 대표적인 곡창지대인 김제시 일대에서만 전체 재배면적(2만1964ha) 중 35%가 넘는 7800ha에서 백수현상이 발생했다.
김제평야, 백수 피해로 벼 수확량 30% 이상 줄어들 듯전북 김제는 산지 비율이 60%를 넘는 한국에서 유일하게 지평선을 볼 수 있는 지역이다. 드넓은 평야가 펼쳐진데다 사질 양토가 많아 삼국시대부터 농업용 저수지인 벽골제가 있었을 정도로 벼농사에 맞춤인 곳이다.
그러나 올해 추석을 맞는 이 지역 농민들의 표정은 밝지가 못했다. 8월 말부터 2주 사이 세 차례 불어닥친 태풍으로 벼농사가 큰 피해를 입었기 때문이다. 이곳 농민들은 벼 이삭에 백수현상이 일어나 전체 수확량의 30~40%가 줄어들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조경희 김제농민회 사무총장은 "김제는 자연 조건이 좋아 2모작을 하는데 그 때문에 더 큰 피해를 봤다"고 설명했다.
"보리랑 벼랑 2모작을 하면 대략 6월 10일경에 논에 모를 심게 되요. 그럼 8월 말쯤부터 벼 이삭이 패기 시작하고. 근데 태풍이 하필 딱 그때 온 겁니다. 10일 늦게 심은 벼만해도 별 피해 없는데 바람 제대로 맞은 거지 뭐." 벼는 수확기가 가까워오면 이삭이 올라온다. 그 안에 수분이 차고 낟알이 맺혀서 커지게 되는데 이 과정에서 바람이 세게 불면 수분이 말라버려서 낟알이 맺히지 못하고 쭉정이만 남는다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벼 색깔이 하얗게 변한다고 해서 백수라 부른다고 한다.
말을 이어가며 주변 논을 살펴보던 조씨는 한 쪽 논두렁으로 기자를 데리고 갔다. 연이은 태풍의 영향으로 논에 쓰러진 벼들이 많았지만 조씨가 보여주고 싶었던 것은 그게 아니었다.
그는 "백수피해를 입은 벼는 시간이 지나면 색깔이 진하고 거무틔틔하게 변한다"면서 색깔이 다른 두 논을 가리켰다. 10일 차이를 두고 심어진 벼는 키는 비슷한데 전혀 다른 색깔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