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철수 서울대학교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이 대선출마를 공식선언한 가운데, 19일 오후 서울 충정로 구세군아트홀 기자회견을 찾은 수많은 지지자들이 TV 모니터를 통해 안 원장의 대선출마선언 기자회견을 지켜보고 있다.
유성호
지난 16일 문재인이 민주당의 대선후보로 선출됐다. 문재인은 파죽의 13연승을 기록하며 결선투표까지 갈 것이라는 일각의 예견을 보기 좋게 무너뜨렸다.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은 마치 문재인의 선출을 기다렸다는 듯이 19일 자신의 입장을 정리하고 공식적으로 대선출마를 선언했다.
입심 좋은 사람들은 벌써 '문.안.드림(문재인 안철수 Dream)'이라는 신조어까지 만들었고 문재인-안철수의 양자 전국 콘서트까지 입에 오르내리고 있다. 안철수가 본격적으로 선거판에 뛰어든 지금, 안철수는 과연 이번 선거판에서 어떤 역할을 하게 될까. 문재인과의 후보단일화를 성공적으로 할 수 있을까? 그가 결국 대통령이 될 수 있을까? 우리는 안철수를 선택해도 되는 것일까?
안철수는 '90스타일' 안철수가 제3후보로서 사상 유례 없이 높은 지지율을 얻고 있는 이유에 대해서는 다양한 분석이 있지만, 그 핵심은 안철수 패러다임이 박근혜나 문재인의 패러다임과 근본적으로 다르기 때문이다. (관련기사:
'군복' 걸친 박근혜-문재인, 안철수 못 이긴다 (이하 군복))
여기에 더해 한 가지 보충해서 말하자면, 지금 우리가 보는 정치인 박근혜의 정체성이 확립된 시기가 1970년대이고 문재인의 경우 1980년대(문재인은 1980년에 사법고시에 합격했고 노무현을 만나 법무법인 부산에 합류한 것이 1983년이었다)라면, 안철수의 정체성은 1990년대에 확립되었다고 볼 수 있다(안철수연구소는 1995년에 설립되었다). 요즘 유행하는 말로 정리하자면, 박근혜는 '70스타일', 문재인은 '80스타일'인 반면 안철수는 '90스타일'인 셈이다.
'90스타일'로서의 안철수는 '70스타일'의 박근혜와 '80스타일'의 문재인과 확연히 다르다. 70스타일이 유신독재로 철권통치를 밀어붙이던 스타일이라면 80스타일은 거대한 민주화의 물결로 군부독재에 저항하던 스타일이다. 이는 '군복' 기사에서 지적했듯이 박근혜와 문재인이 여전히 상호배제적인 패러다임을 갖고 있다는 점과 연결된다.
하지만 90스타일은 여기서 비껴나 있다. 70년대와 80년대가 한국 현대사에서 대단히 독보적인 시기였던 데에 비하면 90년대는 한국사회가 비교적 정상적인 상태로 나아가는 과도기였다고 할 수 있다. YS의 문민정부와 DJ의 정권교체는 어쩌면 그런 시대적 흐름의 반영이었는지도 모른다.
그 결과 90년대는 문화적 다양성이 폭발하던 시기였다. 더 이상 이전의 민주/반민주의 대립구도로 설명되지 않는 영역들이 우후죽순으로 솟아났다. 1992년에 등장한 서태지와 아이들은 한국 가요의 판도뿐만 아니라 한국문화 전체의 지형을 바꿔 놓았다. 대형 연예 기획사들이 등장해 체계적으로 연예인을 길러낸 것도 이 시기이다. 공교롭게도 한국 최고의 연예기획사인 SM 엔터테인먼트가 설립된 것이 안철수연구소가 설립된 1995년이다. 이런 토대 속에서 이른바 팬덤문화가 새롭게 자리잡았다.
서태지가 등장했던 1992년 안방극장에서는 드라마 <질투>가 '트렌디 드라마'의 시대를 열었다. 이와 함께 등장한 X세대 혹은 N세대는 당시 이런 '트렌디'한 경향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캠퍼스를 채웠다. 영화계에서는 <쉬리>가 한국형 블록버스터라는 새로운 가능성을 선보였다. 한류의 직접적인 물적 토대가 이 시기에 구축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편 문화적 다양성이 폭발하게 된 데에는 정보의 혁명도 큰 몫을 했다. 90년대에는 인터넷이 급속히 보급되고 전통적인 PC통신이 웹 환경으로 급격하게 전환되던 시기였다. 90년대 초반에는 공중전화 앞에 길게 늘어선 줄이 익숙한 풍경이었지만, 삐삐와 시티폰을 거쳐 개인 휴대전화가 대중적으로 보급되는 데에 10년도 걸리지 않았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90스타일은 폭발적으로 다양한 문화적 콘텐츠를 만들어 냈으며 그것을 유통하고 소비하는 방식조차도 혁신적으로 바꿔버렸다. 지금 돌이켜 생각해 보면 가히 '문화적 빅뱅'이라고 불러도 모자람이 없을 것 같다. 따라서 <건축학개론>이나 <응답하라 1997>처럼 지금 90년대 복고가 유행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수순일뿐더러, 그 문화적 잠재력이 7080시대와는 차원이 다르기 때문에 그 지속성도 상당할 수밖에 없다.
90스타일은 말하자면 지금 21세기 한국문화의 원형 내지는 일차적인 뿌리라고 할 수 있다. 안철수는 그런 90년대의 한가운데에서 한국형 벤처회사를 차려 성공한 사람이다. 지금 우리가 아는 안철수의 정체성은 그 시절에 형성되었다. 따라서 안철수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 저변에 깔린 90스타일과, 그 시대를 살았던 세대를 함께 이해해야만 한다.
30대가 안철수를 절대적으로 지지하는 이유 언론 보도에 따르면 2012년 현재 가장 진보적인 세대는 30대라고 한다(관련기사:
1997년 HOT vs 젝스키스, 2012년 문재인 vs 안철수). 지금 30대가 10대와 20대를 보냈던 90년대가 문화적 다양성이 폭발하던 시기였음을 생각해 보면 이는 당연한 결과일지도 모른다. 60,70년대에 젊은 시절을 보냈던 지금의 어르신들에게 박정희가 영웅이었다면, 지금의 30대에게는 안철수가 영웅이었다. 40대가 된 386세대와 90년대 '문화적 빅뱅'의 세례를 받은 지금의 30대가 박근혜-안철수 가상대결에서 안철수에게 가히 절대적인 지지를 보내는 것은 이런 맥락에서 쉽게 이해가 된다.
80년대 민주화를 이끌었던 386세대가 거의 본능적으로 새누리당을 거부할 수밖에 없다면, 30대는 안철수를 자신들과 같이 좀 놀았던 사람, 그래서 말이 통하고 이야기가 되는 사람으로 인식할 것이다. 이런 정서적 일체감 혹은 동질감은 설령 정당이나 조직화된 힘으로 가시적으로 드러나지 않더라도, 그 저변에서 막강한 힘을 발휘하기 마련이다. 박근혜와 문재인이 아무리 안간힘을 써도 안철수가 비교적 안정된 지지층을 유지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문화적 빅뱅의 세례를 받은 90스타일은 앞서 말했듯이 70,80년대의 민주/반민주라는 (혹은 자본/임노동의 계급모순이라는) 단선적인 사회적 대립구도로 환원되지 않는 삶의 양식을 만들어 냈다. 안철수가 계속해서 말해 왔던 "나는 보수도 진보도 아니다"는 언명은 90스타일의 이런 특징을 극명하게 드러내고 있다. 따라서 박근혜의 70스타일이나 기존 386의 80스타일로서는 안철수를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을 것이다. 또한 그들의 잣대로 안철수를 재단하는 것도 상당한 무리가 따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