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제주올레 4코스를 역방향으로 걸으며, 표선 해수욕장으로 가는 길에 '미역귀'를 채취한 오토바이 아저씨를 만났다. 인심 좋은 아저씨 덕에 서명숙 이사장과 일행들이 미역귀를 얻어 맛을 보고 있다.
이한기
책에도 소개된 식당, 서귀포 부두 근처의 '할망 뚝배기'도 그의 추천으로 찾아갔었다. 그 집에서 먹은 오분자기 뚝배기와 갈칫국 맛은 지금도 잊지 못한다. 이후로도 제주올레 7코스를 가거나 서귀포 근처에 가면 찾는 음식점 1순위가 할망 뚝배기다. 그 집은 전세버스 관광객들이 찾는 맛집이 아니다. 제주 사람들에게 먼저 인정받은 집이다. 서명숙의 맛집 기준은 이렇듯 허명보다 실속, 신선한 재료의 맛을 잘 살리는 걸 우선 순위로 꼽는다.
문화재나 그림도 기본 지식을 갖고 보면 다르듯이, 음식도 마찬가지다. 이 책에 소개된 '쉰다리'라는 음식은 특이한 이름만큼 생소하다. 냉장고가 없던 시절, 쉰 보리밥을 버리기가 아까워 누룩을 넣고 발효시킨 음료가 쉰다리다. 먹어본 적이 없지만, 술과 알코올의 경계에 있는 쉰다리는 요구르트와 막걸리의 짬뽕같은 맛이란다. 쉰 보리밥을 재활용한 게 유산균 덩어리의 건강 음료로 변신해, 물질하는 해녀들의 피로회복제 역할도 한다니 놀랍다. 이처럼, 서명숙은 고향의 음식에서 살아있는 역사와 문화를 읽는다.
이 책을 읽으면서, 말이 달라서 손짓 발짓하며 의사 소통하는 바디 랭귀지처럼, 다른 나라 사람들과 음식을 통해 교유하는 푸드 랭귀지도 있다는 걸 알았다.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던 어느 비 오는 날, 부침개를 떠올리며 그는 우연히 만난 한국 여자들과 일을 벌였다. 시장에서 밀가루, 호박 등을 사가지고 와 알베르게(순례자 숙소)에서 부침개를 만들었다. 알베르게에 있던 초면의 이방인들에게 한국의 부침개 세례를 베풀며, 음식으로 소통하고 마음의 문을 열었다. 이 일을 '오병이어'의 기적과 비교할 때는 입가에서 피식 웃음이 터졌다.
<식탐> 원고를 쓰면서 음식과 관련된 책들을 읽어보니, 남자들은 대개 음식 품평에 가까운 에세이, 여자들은 레시피를 담은 요리 책이 대부분이었단다. "다른 여자들보다는 남이 해주는 음식을 더 많이 먹어봤고, 남자들보다는 더 많이 음식을 만들었던 경험을 살려" 낸 책이 <식탐>이다. 서명숙이 차린 밥상 <식탐>에 둘러앉아 그와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시간 가는 줄 모른다. 책의 마지막 장을 덮자, 어느 해 가을 제주 바닷가 해녀의 집에서 파도 소리를 들으며, 그와 문어 숙회에 소주 한 잔 주고받던 기억이 떠오른다. 음식은 사람이다.
식탐 - 길 내는 여자 서명숙 먹으멍 세상을 떠돌다
서명숙 지음,
시사IN북,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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