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회 여성인권영화제 상영작 <델라웨어 12번가> 장면.
한국여성의전화
이 영화는 2009년의 플로리다 주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영화에도 잠깐 나오지만 2009년 플로리다 주에서는 임신 말기 여성들의 낙태 시술을 해오던 조지 틸러 박사가 총으로 살해를 당하는 끔찍한 사건이 벌어졌다. 심지어 플로리다에서는 이런 사건이 처음도 아니었다. 이미 1994년에도 낙태 시술의가 목사에 의해 살해된 적이 있었다.
여성의 낙태 권리를 프라이버시권에 근거한 여성의 결정권으로 인정한 1973년의 '로우 대 웨이드' 사건 이후 미국에서는 6개월 이내의 낙태를 연방헌법 차원에서 원칙적으로 허용하고 있지만, 주마다 각기 다른 기준들을 적용하고 있어 끊임없는 논쟁의 대상이 되고 있다. 특히 선거 때만 되면 낙태 논쟁이 뜨거운 이슈로 떠오르는 미국 사회에서 플로리다 주는 올해 대선에서도 공화당의 주요 공략지이다. 델라웨어 12번가는 바로 이 플로리다 주에 있는 것이다.
영화는 12번가 코너에 마주보고 자리한 낙태 클리닉과 프로라이프 단체의 건물을 오가며 플로리다 주 낙태 논쟁의 전쟁과도 같은 일상을 보여준다. 'Pregnancy Care Center'라는 그럴듯한 이름의 건물에서 활동하는 앤은 함께 활동하는 프로라이퍼들에게 낙태 상담 전화가 오면 속여서라도 일단 찾아오게 만들라고 강의를 하고, 낙태 클리닉으로 착각하고 찾아온 여성들에게 태아 모형과 초음파 화면, 낙태 시술 장면을 담은 비디오 등을 보여주면서 낙태 결정을 미루게 만든다.
낙태가 유방암 발병률을 높인다는 허위 정보를 담은 팸플릿도 항상 비치해 두고 있다. 그런가 하면, 함께 활동하는 프로라이퍼 토니는 맞은편 낙태 클리닉 차를 미행하면서 낙태 시술 의사들을 찾아낸다.
그런데 매일 24시간 낙태 클리닉 앞에서 시위를 하는 이들의 모습에 비해, 항상 창문을 가리고, 유리창을 가린 차로 낙태 시술 의사들의 이동을 도와야 하는 캔디스와 아놀드의 모습은 아무런 정황을 모르고 본다면 마치 불법적인 일을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일 정도이다. 그러나 사실 이들은 바로 얼마 전에 낙태 시술 의사가 살해를 당한 바로 그 플로리다 주에서 아주 현실적인 생명의 위협을 느끼고 있는 것이다.
보다 중요한 건, 이 영화에 등장하는 임신한 여성들의 이야기이다. 15세에 아이를 임신한 위들린, 아직 보험도 없고 직업도 없는, 엄마와 함께 살고 있는 19세의 브리트니, 이미 두 아이를 키우고 있는 24세의 빅토리아, 46세에 아이를 가지게 된 어느 여성.
임신은 이들의 삶에 아주 구체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그리고 이들의 삶은 태어날 아이의 삶과도 직결되어 있다. 여성들은 임신을 한 자신의 삶과 동시에 태어날 아이에 대한 책임감에 대해 고민한다.
낙태는 사탄의 일?... 중요한 건그러나 프로라이퍼들은 그들에게 아이가 태어나면 무엇이든 해결될 것처럼 말하며 양육에 대한 책임감이나 이후의 삶에 대한 고민은 일단 미뤄두게 만든다. 그들에게 중요한 것은 오로지 '태아가 생명이라는 것'과 '생명을 빼앗는 낙태는 사탄의 일'이라는 것뿐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 영화에서 프로라이퍼들의 설득에 못 이겨 초기 낙태의 시기를 놓치고 만 위들린은 혼자서라도 낙태를 해보기 위해 초산을 마시고 무거운 것을 드는 등 위험한 시도를 해야 했다.
프로라이프 단체에서 임신 기간을 거짓으로 진단받은 여성들도 고민을 하다가 낙태의 시기가 늦어지면서 시술 시의 위험성이 높아져 버리고 만다. 그러나 이런 식으로 여성들이 처하게 될 생명의 위험이나 삶의 문제는 프로라이퍼들에게 전혀 생명권으로서의 고려 대상이 아니다.
생명이란 무엇인가. 과연 심장이 뛰는 것, 세상에 태어나는 것만이 생명일까? 생명을 잃는다는 것은 단지 심장이 멈춘다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것은 이 세상에서 한 개인이 살아온 삶과 관계들이 끝나는 것이다. 결국 생명은 삶의 전 과정인 것이다.
그리고 이 삶의 주인은 온전히 자기 자신이어야 한다. 헌법재판소가 판결문에서 언급한 대로 생명에 대한 권리가 누구도 침해할 수 없는 '기본권 중의 기본권'이라면 여성에게도 당연히 온전히 자기 삶을 살 '기본권'으로서의 생명권이 인정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임신과 출산의 경험 속에서 여성의 삶은 끊임없이 국가의 재생산 정책과 가부장적 가족주의에 의해 통제되고, 사회적 폭력과 불평등, 불안정한 노동 환경 등은 여성의 삶을 지속적으로 위협한다.
그리고 이렇게 여성의 삶이 불안정한 이상, 태어나고 앞으로 태어날 아이의 삶 또한 끊임없이 불안정한 상황에 놓일 수밖에 없다. 따라서 이런 조건들을 고려하지 않고, 오직 태아의 '태어날 권리'로서의 생명권만을 추상적이고 윤리적인 수준으로 절대화하는 것은 오히려 생명에 대한 보다 깊은 성찰과 사회적 책임을 방기하게 만드는 것일 뿐인 것이다.
낙태 처벌을 강화할수록 여성들은 안전하지 못한 시술이나 후기 낙태로 위험에 놓이게 되고 여성들에 대한 폭력적 관계와 사회적 불평등은 변화를 기대하기가 어렵게 된다. 그러나 사회가 생명에 대한 책임을 여성에게 전가하는 대신, 여성의 삶과 건강을 위한 지원에 힘쓰고 경제적·사회적 불평등을 줄여나가는 데에 힘을 쏟는다면 오히려 낙태가 더욱 줄어들 수 있다는 사실을 이미 낙태를 합법화한 많은 나라들이 증명하고 있다.
여성들에게 임신과 출산, 임신중지에 대한 선택은 일순간의 경험이 아니라 아주 중요한 삶의 일부이다. 생명은, 추상적인 윤리가 아니라 비로 이런 구체적인 삶의 현실 속에 있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는 나영 지구지역행동네트워크 사무국장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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