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짐 부치는 중모아놓고 보니 상당한 양이다. 버린만큼 더 많은 걸 얻게 될 것이다.
최성규
뭐든 하나라도 더 챙기려는 세태에서 자전거 여행은 욕심을 버리라 한다. 가진 것을 버릴수록 오히려 몸과 마음이 편해짐을 직접 보여준다. 편리함만 추구하는 미국인들이 자전거를 통해 교훈을 얻길 바라며 신나게 페달을 밟는다.
고어빌(goreville)까지 7마일 남겨 둔 터널 힐 로드(tunnel hill road)를 주행하다가 심상치 않은 상황을 목격했다. 오토바이 한 대가 널부러져 있고 그 옆으로 한 남자가 풀밭에 다리를 쭉 뻗은 채 앉아 있다. 그 주위로 지폐가 나뭇잎처럼 흩어져 있었다.
마침 지나가던 차 한 대가 멈춰 섰다. 운전자와 함께 남자에게 다가갔다. 박살이 난 우체통, 형편없이 긁힌 오토바이, 얼굴에 땀이 송글송글 맺힌 채 머리에 피를 흘리는 남자. 의식은 있지만 이따금 힘없이 픽픽 쓰러지는 모습에 애가 탔다.
머리엔 찰과상이 있었고 오른 손바닥은 횡으로 길게 찢어져 선명한 속을 내비치고 있었다. 출혈은 없었다. 풀밭 위에 떨어진 핏자국은 어디에서 나온 것일까? 왼쪽 다리를 감싼 바지가 피로 물들고 있었다.
아저씨에게 칼을 빌려 바지를 찢었다. 조심스레 정강이 부위부터 위로 찢어나갔다. 두터운 천이 찢겨나가면서 오금이 드러났다. 순간 입이 마르며 식은 땀이 흘렀다. 오금 아래로 10cm 정도 깊은 자상이 보였다. 살거죽이 없어져 혈관과 힘줄 같은 속구조물이 보였다.
혈관에는 이상이 없어 출혈은 크지 않았다. 그래도 조금씩 배어나온 혈액은 어느덧 방울을 이뤄 바지를 적시고 바닥으로 떨어졌다. 어린 딸을 데리고 지나던 여인이 우리와 합류했다. 그녀가 길게 찢은 비닐봉지로 허벅지를 묶어 지혈하는 사이 운전사 아저씨와 나는 쓰러진 남자에게 계속 말을 걸었다. 의식을 깨우는 동시에 구급차가 오기 전까지 안심시키려는 의도였다.
사고 현장에서 미국인들은 침착했으며 유머감각도 잃지 않았다. 심지어 얼굴색이 파리한 사고 당사자도 농담 따먹기를 빼놓지 않았다.
"친구, 멈춰줘서 고맙네. 자전거 타고 어디 가던 길이지?""서쪽. 오리건 주까지 가죠.""세상에나. 빌어먹을. 저 자전거로 거기까지 간다고?"털복숭이 운전사 아저씨는 풀밭에 떨어진 돈을 다시 그러모아 건넸다.
"이봐, 돈 좀 잘 챙기라구." 신고를 받은 보안관이 도착하고 몇 분 후 앰뷸런스 차량이 멈춰 섰다. '고맙네, 고마워'를 연발하는 피해자를 들것에 싣고 앰뷸런스는 병원으로 향했다. 잠시 착한 사마리아인이 되었던 우리 셋도 제 갈 길을 간다.
처음 보는 오토바이 사고에 괜스레 몸이 움츠러 들었다. 그 기세 좋던 오토바이가 이렇게 형편없이 당하다니. 백미러를 평소보다 유심히 쳐다보며 페달을 밟는다. 절구통만큼 굵고 인상적인 하루다. 내일 하루는 푹 쉬면서 마음을 좀 추슬러야 되려나.
6월 16일 토요일Goreville, IL - Carbondale, IL 27.5mile ≒ 44.3km출발을 앞두고 자전거를 점검해보니 뒷바퀴의 팽팽함이 예전만 못하다. 그간 펑크 한번 없어 속을 썩히지 않았는데 기나긴 행군에 바람이 조금씩 빠졌다. 공기펌프를 꽂자 순식간에 바람이 빠지며 타이어가 너덜해졌다. 공기펌프의 호스 연결부분에서 바람이 새고 있었다. 바람을 빼내는 공기펌프라. 기가 막힐 노릇이다.
말라비틀어진 사과 꼴을 한 뒷바퀴를 들고 도움의 손길을 찾아 근처를 배회했다. 근처 카 센터에서 밥 투팔(Bob Toupal)과 로드니 바이어스(Rodney byers) 두 분을 만났다. 로드니 아저씨는 무료로 튜브를 갈아주었고 투팔 아저씨는 카본데일에 사는 한국인 친구를 소개해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