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N <응답하라 19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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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의 첫 회가 끝날 무렵, 델리스파이스의 '고백'이라는 10년 전 노래가 흘러나오는 가운데 주인공의 독백이 이어진다. '1997년'과 '열여덟'이란 숫자가 가만히 가슴을 파고들고, 어느새 기억 저편에서 물기를 머금은 바람이 불어와 머릿속을 휘젓는다. 꼭 1997년이거나 열여덟일 필요도 없다. 모두가 각자의 '그 시절'로 돌아가면 그뿐이다. 각자의 시절로 돌아가 몇 번이고 울다가 웃다가를 반복하다 보면 어느새 드라마에 흠뻑 젖어들게 된다. 그렇게 <응답하라 1997>은 오늘 우리 앞에 1990년대, 그 시절을 다시 불러내고 있다.
그렇다고 '그 시절'을 떠올리게 하는 것이 이 드라마의 전부는 아니다. 공중파 방송 3사에 더해 최근 종합편성 방송사들까지 겁없이 뛰어들어 피 튀기는 드라마 전쟁을 벌이는 마당에 여러 가지로 불리할 수밖에 없는 엔터테인먼트 전문채널이 겨우 '추억'만 팔아 시청률 4%를 넘기기란 어려운 일이다. 알고 보면 이 드라마, 보기보다 만만치 않다.
<응답하라1997>은 자신이 해야 할 이야기가 무엇인지를 잘 알고 있다. 바꿔 말하면 대중이 무엇을 원하는지를 정확히 알고 있다는 뜻이다. 이 드라마가 마치 이른바 '빠순이'(이 드라마의 주인공들은 HOT와 젝스키스의 빠순이들이다)들을 내세워 90년대 말의 열광적 팬덤 문화를 주로 다루고 있는 것처럼 알려져 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하나의 설정일 뿐, 그것으로 이 드라마를 온전히 설명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가만히 들여다 보면 <응답하라 1997>에는 오로지 친구와 가족들만이 등장한다. 어디를 가든 이들은 늘 친구와 가족과 함께다. 말하자면 이들은 친구와 가족들 사이를 오가며 우정과 사랑을 키워가고, 카메라는 오로지 그것만을 쫓는다. 친구와 가족, <응답하라 1997>은 여기에서 벗어나는 법이 없다. 그것이 바로 이 드라마가 담아내고자 하는 전부이기 때문이다. 비열한 방해꾼도 없고, 골치 아픈 음모도 없다. 이들은 마치 친구와 가족이 세상의 전부인양 오로지 그 안에서 서로 부딪히고 뒤엉키면서 오해하고 미워하고, 또 다시 이해하고 사랑하면서 그렇게 살아간다.
그래서 이 드라마는 정말이지 따뜻하다. 말하자면 추억에 가장 잘 어울리는 온도를 찾아낸 셈이다. 사람들이 이 드라마에 빠져드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그렇다고 가족 시트콤을 떠올리면 곤란하다. <응답하라 1997>은 매회 제법 묵직한 주제 의식들을 던져주기 때문이다. 드라마 속 인물들은 친구와 연인, 또 가정과 학교라는 울타리 속에서 부딪히게 되는 여러 문제들 앞에서 당황한다. 얼핏 10대와 20대의 경계에서 처음으로 맞닥뜨리게 되는 풋내 나는 고민거리들로 보이지만, 실은 대개가 나이를 더 먹는다 해도 여전히 쉽게 풀리지 않는 것들이다. 우리 모두는 오늘도 친구와 연인 그리고 가족들 사이에서 힘들어하고 있지 않은가.
그렇게 이 드라마는 지나간 시간들 속에서 아직 우리가 풀어내지 못한 고민거리들을 끄집어내 보여주고 있다. 그래서 이 드라마의 여운은 제법 길다. 사람들이 이 드라마에 빠져드는 또 하나의 이유다. 이처럼 성공에는 다 그만한 이유가 있는 법이다.
정치 드라마 '응답하라 2002'가 외면 받는 이유여의도 정가로 고개를 돌려보면, 여기에도 '그 시절'을 불러내려는 또 다른 드라마가 한창이다. 민주통합당이 불러내고 싶은 '그 시절'이란 아마도 참여정부 5년일 터이니, '응답하라 2002'라 부르기로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