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새누리당 대통령후보가 8월 21일 경남 김해 봉하마을 노무현 전 대통령 묘역을 찾아 분향하고 있다.
남소연
대선 D-100일, 박근혜 후보의 행보가 요즘 화제다. 박근혜는 새누리당 대선 후보로 선출된 직후 김대중 노무현 묘소를 거쳐 전태일 동상까지, 그리고 홍대 거리와 수해지역을 휘저으며 거침없는 '통합행보'를 내딛었다.
'뉴DJ 플랜' 연상시키는 박근혜의 광폭행보
다소 파격적으로 보이는 박근혜 후보의 행보는 1997년 대선에 나선 당시 김대중 후보의 이른바 '뉴 DJ 플랜'을 연상시킨다. 실제 박근혜 캠프에서는 DJ의 선거운동을 참고했다고 한다. 당시 네 번째로 대권에 도전하던 김대중 후보에게는 '대통령병 환자'라는 꼬리표가 따라다녔다. 중간층을 끌어안으려는 '뉴DJ 플랜'은 '대통령병 환자'와 결합되면서 오히려 안 좋은 이미지를 만들기도 했었다.
1971년, 그런 '미래의 대통령병 환자' 김대중을 이기고 대통령에 당선된 박정희는 이듬해 10월 유신을 단행해 철권통치의 길을 열었다. 1971년 대선에 박정희 대통령이 다시 출마할 수 있었던 것은 1969년 이른바 3선 개헌으로 대통령이 세 번 연임할 수 있게끔 헌법을 바꿔 놓은 덕분이었다. 대통령이 되려고 군사 쿠데타에 3선 개헌과 유신개헌까지 저지른 박정희에게는 '대통령병 환자'라는 꼬리표가 붙지 않았다. 그랬던 부친의 못다 이룬 꿈을 이루겠다고 대통령이 되려는 박근혜 후보가 1997년의 김대중 후보를 벤치마킹하는 현실은 어쩌면 역사의 아이러니인지도 모르겠다.
박근혜의 변신은 당내 경선에 출마할 때부터 본격적으로 예고되었다. '국가'보다 '국민'을 앞세운 그의 출마선언문부터 화제였다. 보수언론이 친절하게 세어 본 바에 따르면 '국민'이라는 단어는 5년 전 17차례 나왔으나 이번에는 80회나 등장했다. 실제 내용도 "국정 운영의 패러다임을 국가에서 국민으로, 개인의 삶과 행복 중심으로 확 바꿔야 한다"며 뉴DJ 플랜 못지않은 이미지 변화를 꾀했다. 적어도 겉으로 보기에는 지금까지 국가와 자신을 동일시해왔던 박근혜로서는 상전벽해가 따로 없는 변신이다.
"우리는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 땅에 태어났다"로 시작하는 국민교육헌장을 외고 다니며 박정희 시대에 초등학교를 다녔던 나는 여전히 암암리에 나의 세대가 그런 역사적 사명을 짊어지고 있다는 착각에 빠지곤 한다. "나라의 융성이 나의 발전의 근본임을 깨달아..."라는 대목을 욀 때면 어린 마음에도 '왜 나는 나라의 융성을 나의 발전보다 먼저 생각하지 못하는 나쁜 어린이일까'하는 자괴감에 빠지기도 했었다.
그 시대를 살았던 많은 사람들에게는 "나라의 융성이 나의 발전의 근본"이라는 명제를 여전히 가슴 깊이 간직하고 있을 것이다. 여기에는 천 년이 넘는 세월 동안 강력한 중앙집권제를 해 온 우리의 역사도 아마 한 몫을 했을 것이다. 가난하고 저학력인 사람일수록 상대적으로 박근혜 지지율이 높은 것도 이런 사정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내가 지금 먹고 살기가 좀 힘들어도 나라가 잘 되고 나랏님이 잘 사는 것이 결국 나도 잘 사는 것이고 그렇기 때문에 당장의 고통은 버틸 수 있다는 민초들의 갸륵한 마음씨가, 악한 마음을 먹은 독재자에게는 더없이 강력한 정치적 밑바탕이 된 셈이다.
박근혜의 대변신? 국민교육헌장의 가르침은 대기업이 잘 돼야 서민경제가 살아난다는 논리로 끈질기게 살아남았다. 하지만 이제는 여야를 막론하고 경제민주화를 주장하는 마당이라, 근거 없는 이 낙수효과론도 그 생을 다한 것 같다. 박근혜는 새누리당 대선후보로 선출된 뒤 후보수락연설에서 "국가의 성장이 국민 개개인의 행복으로 연결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저는 국정운영의 패러다임을 국가에서 국민 중심으로 바꾸겠습니다"라고까지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