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구덩이를 파고, 2.호박씨를 심어서, 3.가뭄과 우박을 이겨내고, 4.꽃을 피워, 5.애호박이 열리고, 6.늙은 호박이 되기까지 호박의 일생
최오균
우박을 맞은 호박잎은 마치 따발총을 맞은 것처럼 구멍이 송송 뚫려 아사 직전까지 가고 말았다. 우리 집 근처에 단 호박을 2000평이나 심은 농부는 돌풍을 수반한 우박으로 완전히 망가져버린 호박 넝쿨을 거둬내며 하늘을 바라보고 한숨만 푹푹 쉬고 있었다. 애써 가꾸어 놓은 호박이 일거에 쑥대밭이 되어버린 농부의 마음은 어떠하겠는가!
그러나 나는 결코 포기하지 않고 아침저녁으로 정성스럽게 물을 주었다.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했던가. 호박은 가뭄과 우박이란 호된 시련을 이겨내고 무럭무럭 자라나며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어주었다. 아침마다 활짝 피어나는 호박꽃을 바라보며 호박꽃이 이렇게 예쁜 줄은 예전엔 미처 몰랐다.
호박꽃도 꽃이냐고 그 누가 비웃을 수 있을까? 건강한 호박꽃에 벌들이 찾아들어 꿀을 빨아 먹는 평화로운 풍경을 본 사람은 다시는 그런 말을 하지 못할 것이다. 지금까지도 끊임없이 피워주는 호박꽃은 삭막한 집안 분위기를 화기애애하게 바꾸어 놓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