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학자'인 권인숙 명지대 방목기초교육대학 교수가 5일 오후 서울 종로구 경복궁역 인근 한 카페에서 <오마이뉴스>와의 인터뷰 중 "언론의 관심을 끌 만한 극단적인 사례만을 기준으로, 분노에 가득한 실시간 보도로 만들어진 정서를 가지고 전반적인 성폭력범에 대한 사회적 태도를 결정하는 것은 굉장히 위험하다"고 말했다.
유성호
포털사이트 '네이버' 검색창에 '성폭행'을 쳐본다. 하루 동안 나온 기사만 477건. <"만삭 아내, 성폭행 후 의자에..." 남편의 호소>, <성폭행 후 숨진 여대생 찍힌 모텔 CCTV에는...>, <한 건물에 사는 장애인 성폭행 피의자 2명 보석 석방 논란>. 이 정도면 <살인의 추억>에서 배우 송강호가 말한 '강간의 왕국'이라는 대사가 절로 떠오른다.
2012년 1월 1일부터 2012년 9월 6일 오후 12시 37분 현재 '네이버'에서 검색되는 '성폭행' 키워드 기사는 20885건에 이른다. 같은 키워드의 기사가 2007년 한 해 동안 5167건, 2008년에는 7627건 검색된 것과 비교한다면 가파른 상승세다. 참고로 '2011년 범죄백서(법원 연수원)에 따르면, 강간(성폭력범 포함) 범죄 발생 건수는 2007년 13634건, 2008년 15094건, 2010년에는 19939건이었다.
'여성학자'인 권인숙 명지대 방목기초교육대학 교수는 이명박 정부 들어 성폭력, 특히 아동성폭력 보도가 4배 정도 늘어났다고 말한다. 권 교수는 이러한 성범죄 보도의 증가가 '공안통치'를 향한 위정자의 욕망, 그리고 언론의 상업주의와 무관하지 않다고 본다.
그렇다면 이러한 보도가 성범죄 해결에 도움이 될까. 지난 5일 서울 경복궁역 근처 한 카페에서 <오마이뉴스> 기자와 만난 권인숙 교수는 오히려 그 부작용을 우려했다. 지난해부터 대학생과 초등학생, 학부모를 대상으로 '성폭력의 두려움'에 관한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는 권 교수는 "몇몇 극단적인 성범죄 사례에 대한 언론의 선정적인 보도가 여성이나 아이들에게 '과장된 공포'를 심어준다"면서 "이는 굉장한 트라우마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대부분의 성폭력은 일상적인 관계에서 일어난다"고 규정한 권 교수는 "언론의 관심을 끌 만한 극단적인 사례만을 기준으로, 분노에 가득한 실시간 보도로 만들어진 정서를 갖고 전반적인 성폭력범에 대한 사회적 태도를 결정하는 것은 굉장히 위험하다"고 거듭 강조했다. 이와 함께 언론의 '자성'도 주문했다.
다음은 권 교수와 나눈 일문일답을 정리한 것이다.
"살인 동반하는 성폭력 드물어, '과장된 공포'... 친고죄 문제부터 해결해야" - 성폭력 보도에 빠지지 않는 것이 '술김에', '성적인 충동을 참지 못해서'라는 표현이다. 이번 나주 고아무개씨 사건도 다르지 않다. 성폭력을 '성욕', '욕정'의 문제로 볼 수 있나."성폭력 가해자 연구를 해보면, (성폭력의 원인이) 순수한, 통제되지 않는 욕정만으로 이야기되는 경우는 별로 없다. 여러 가지 분노의 표현이기도 하고 확인되지 않는 남성성의 표현이기도 하고. 이런 게 성욕과 연결되어있는 부분도 있다. '술김에'가 말이 되지 않는 것이, 술을 마셨다고 해서 전혀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이 뭔지를 판단할 수 없다면 그런 행위를 할 수 있는 능력도 없다. 판단 능력이 있으니까, 해도 된다고 생각하니까 하는 거다. 욕구 문제를 보더라도, 욕구가 병적인 상태로 가서 통제불가능한 비율은 매우 적다. 그런 것을 이야기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 성폭력은 다양한 내면적, 환경적 요소를 반영한다."
- 보수 언론뿐만 아니라 진보 언론에서도 '아동포르노' 등 '음란물'을 성범죄의 원인으로 내세우고 있다. 경찰은 아동·청소년 음란물을 소지만해도 처벌하겠다고 밝혔는데."아동포르노는 분명히 제한되어야 한다. 그렇지만 아동성폭력의 원인을 아동포르노에서 찾는 것이 과연 합리적인지 의심스럽다. 소아성기호자 발생 과정이 포르노를 통해서만 만들어진다고 볼 수 없다. 포르노 때문에 아동을 성폭력 대상으로 선택한다기보다는 본인의 여러 가지 심리, 예를 들면 어른을 상대하는 것이 두렵고 인간관계에 자신이 없기 때문에 약자를 선택하는 경우도 있을 수 있다. 원래 성폭력이라는 것 자체가 약자를 선호한다.
하나의 사건에서 하나의 단서가 발견되면 그것이 전부인 듯이 이야기하는 방식은 일반적인 성폭력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아동포르노는 분명 문제가 되겠지만, 음란물 전반에 대해 너무 함부로 쉽게 태도를 결정한다. 이건 사회적 논쟁이 있어야 하는 문제라고 본다. 전 세계적인 유통망을 가지고 있는 산업에 대해 개인의 책임만을 자꾸 따지고 있다. 개인의 삶을 규제하는 부분은 조심스러워야 한다."
- 성폭력 관련 보도가 연일 쏟아지고 있다. 수치상 성폭력이 증가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신고율이 늘어난 것으로 볼 수도 있다. 성폭력이 정말로 늘어난 것인지, 언론이 이를 매일같이 자극적으로 보도하기 때문에 그렇게 느껴지는 것인지 혼란스럽다. "성폭력은 워낙 신고율이 낮은 범죄이기 때문에 '늘어나고 있다. 줄어들고 있다'를 함부로 말하기 어렵다. 사실 이전에도 계속 이런 사건들은 있어 왔는데, 얼마만큼 사회에서 주목을 하고 보도를 하느냐에 따라서 체감하는 발생률이 달라지는 것 같다. 기소율 가지고 이야기하는 것도 우리 사회에서는 의미가 없는 게, 성폭력은 친고죄다. 부모가 돈이 있고 그러면 쉽게 합의를 볼 수 있는 상황이다. 기소까지 가는 비율은 거기에서 걸러지는 게 많기 때문에 성폭력 발생률에 대해 함부로 이야기하는 것은 한정된 부분이 있다."
- 성폭력 보도가 증가하는 이유는 뭘까. "성폭력 뉴스가 장사가 되는 뉴스라는 생각이 일반화됐다. 사실 성폭력 뉴스는 선정적인 내용이 담겨 있기 때문에 클릭수가 굉장히 많이 나온다. 아무래도 사람들이 공분을 잘 하는 자극적인 뉴스니까. 이는 언론의 '활로 찾기'의 방편일 수 있다. 미국에서도 지방의 질 낮은 타블로이드지 같은 경우에는 매일 매일 성폭력 뉴스 비율이 엄청나다. 성폭력, 그 중에서도 아동성폭력, 유괴로 포장을 한다. 일본에도 저급 TV에서는 하루 종일 성폭력 뉴스를 보여주는 데도 있다."
- 이런 보도들이 성범죄 예방에 도움이 된다고 보나. "지난해부터 한국성폭력상담소와 함께 대학생, 초등학생, 학부모를 대상으로 '성폭력의 두려움'에 관한 연구를 진행했고, 현재 보고서를 쓰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성폭력에 대해 많이 이야기를 하고 공포를 많이 퍼트릴수록 건강한 일인 것처럼, 좋은 일에 앞장서는 것처럼 생각하는 언론 분위기가 있다. 그런데 그게 불필요한 공포를 확산하는 경향을 낳는다. 특히 여성이나 아이들에게는 트라우마를 남기기 때문에 조심해야 한다.
예를 들면, 부모들이 어렸을 때부터 여자 아이들 속옷 단속시키고 '네가 조심하지 않으면 성폭행당한다'고 계속 애한테 공포를 준다. '(성폭행) 당하면 안 돼.' 이런 식으로 아이를 키웠을 때 아이는 피해의식이 생긴다. 피해의식이 많은 아이일수록 (성폭력) 피해를 당했을 때 대처능력도 떨어지고 극복도 못한다. 겁이 많으니까. 이처럼 극단적인 공포를 가지고 있으면 여성들이 자신을 믿으면서 할 수 있는 최소한의 대처능력을 발휘할 수 없게 된다. 이 과정에서 남성일반을 가해자 내지 보호자로 보는 경향성이 생긴다."
- 보호자로 본다는 것은 남성에게 의존적으로 된다는 건가. "남자는 집에 데려다줘야 하고 여자는 보호받아야 하는 되는 거다. 여자들은 공적인 공간에서 항상 위축되고 혼자 여행도 못 가고. 성폭력의 가능성을 줄이기 위한 '회피행동'을 하면서 굉장히 위축된 삶을 살아야 하는 요구를 받게 된다. 그건 굉장히 트라우마적인 제약이다.
정말로 현실의 위험이 그렇게 큰가. 지금의 성폭력 공포는 분명 과장되어 있다. 김길태 사건 당시 '200명의 성폭력 가해자들이 거리를 돌아다니고 있다'는 보도가 나왔다. 당장이라도 꼼짝 안 하고 집에 있어야 할 것 같은데, 사실 성폭력은 집 안에서 더 많이 일어난다. 아는 사람에 의해서. 친족간 성폭행이 그렇다. 그런데 여자들 전반을 너무 극단적인 사례에 초점 맞춰서 성범죄의 두려움에 옭아매려고 하고 있다. 살인까지 동반하는 성폭력은 많이 일어나는 사례가 아니다.
사람들은 자신의 경험을 통해 성폭력에 대한 생각을 갖는 게 아니라 언론이 주는 정보를 얻는다. 택배 받다 성폭행 당했다고 하면 모두다 택배 안 받기 시작하고. 언론의 영향력은 절대적이다. 따라서 언론의 성폭력 보도는 굉장히 조심스러워야 한다."
"<건축학개론>도 '술 마시고 엎어뜨려라'... 성폭력은 일상적인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