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깨를 베기 전에 먼저 거적을 깔아놓는다
최오균
지난 8월 30일, 아랫집 현희 할머니네 집에 태풍 피해가 없는지 궁금해 들렀다. 태풍이 지나갔지만 연일 비가 내리고 있었다. 두 부부는 마침 고추를 따서 말리고 있었다.
"이번 태풍에 큰 피해는 없는지요?""네, 벼가 좀 쓰러지기는 했는데 다행히 큰 피해는 없어요. 그런데 날이 개면 깨를 베야 해요. 그런데 사람을 구할 수 없어 큰일이군요."비가 그치면 고추도 따고, 논에 농약도 쳐야 하는데... 참깨밭에는 깨가 익을 대로 익어 지금 수확하지 않으면 깨가 쏟아져 내려 큰일이란다. 돈 주고 일하는 사람을 구하려고 해도 모두 바빠 사람 구하기가 하늘에 별 따기란다. 두 부부는 나더러 "누구 일할 사람 있으면 좀 구해달라"며 울상을 지었다.
농사는 시기를 놓치면 안 된다. 현희네 깨밭은 바로 우리집 아래에 1000여 평 정도 되는데 내가 보기에도 깨가 아주 잘 여물어 수확을 기다리고 있었다. 사정을 보니 일을 할 줄 모르는 나라도 좀 도와줘야 할 형편. 깨를 베어내는 일은 기계로 할 수 없는 일이다. 깨를 베고 털어내는 일은 여전히 원시적인 방법으로 사람의 손을 빌려야만 한다.
현희 할머니는 우리집 일이라면 팔을 걷어붙이고 도와주시는 분이다. 올해 초에 이곳 동이리에 이사를 온 뒤 텃밭을 가꾸다가 모르는 게 있으면 나는 늘 현희 할머니께 달려가 물어보고는 했다. 이번에 배추 모종과 무씨를 고르는 일도 손수 전곡 농약상에 함께 가서 골라 주셨다.
나는 그 자리에서 서울에 있는 친구 응규에게 전화를 걸었다. 마침 친구가 전화를 받았다. 친구에게 현희내 집 전후 사정을 말했더니 일요일부터 시간을 낼 수 있단다. 내 친구 응규는 시골에서 농사를 지어봐서 어지간한 농사 일을 거의 곧잘 해낸다. 마침 현희 할머니와는 여러 차례 안면이 있어 서로 아는 사이기도 했다.
"일요일부터 서울에 있는 내 친구와 제가 좀 도와 드리죠.""아이고, 그 친구 분이 도와주시면 너무나 고맙지요!"'아차' 하면 우수수 쏟아지는 참깨
우리는 지난 2일 오전 7시부터 현희네 깨밭에 가서 깨를 베기 시작했다. 마침 비가 개어서 일하기에는 좋은 날씨였다. 그런데 깨를 베어내는 작업은 보기보다 쉽지가 않았다. 자칫 잘못하면 그 아까운 깨가 땅에 다 떨어지기 때문이다.
현희 할머니는 작업 순서를 차근차근 설명했다. 먼저 큰 거적을 깨밭에 길게 깔아놓고 깨를 조심스럽게 베어낸 뒤 나란히 늘어놓는다. 경우에 따라서는 작은 거적에 베어내어 큰 거적에 옮겨 놓기도 한다. 그 다음에는 베어낸 깨를 적당한 크기로 묶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