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의 홍보용 플래카드과연 전·월세값의 고통은 해결될까
장윤선
[4년차] 없는 사람들끼리의 전쟁... 네팔 노동자가 온다고? 주인과 우리의 관계는 악화일로였다. 가장 문제가 된 점은 '주인이 돈이 있는데도 안 주는가', 혹은 '돈이 정말 없어서 못 주는가'였다. 견디다 못한 우리는 결국 내용증명을 주인에게 보냈다. 주인이 압박을 받아 돈이 있다면 내놓게 하려는 생각이었다. 여기에는 법원에서 일하는 신랑 친구의 의견이 보태졌다. 대부분의 집 주인은 돈이 있으며, 없는 척하고 안 주다가도 무엇인가 서류로 된 것들이 날아오면 돈을 준다는 귀띔을 했기 때문이다.
내용증명은 여지없이 날아갔고, 그걸 손에 쥔 주인은 펄펄 뛰며 자기를 사기꾼으로 몬다고 난리였고, 우리도 지지 않고 우리 사정은 어떻게 되는 거냐고 되받아쳤다. 동네 사람들이 모두 구경을 나올 정도로 고래고래 고함을 지르고 한바탕 싸움을 벌이고 나서는 눈물을 참을 수가 없었다.
"애기 엄마, 빨리 올라와 봐요. 의논할 게 있어."불편한 냉전이 지속되던 어느 날, 주인의 숨 넘어가는 듯한 전화가 다시 걸려왔다. 이번에야말로 방이 나간 것인가. 일말의 기대를 안고 나 역시 숨 넘어가게 2층으로 올라갔더니 이번에는 옆집의 아가씨와 밑의 또 다른 반지하방 세입자까지 모두 와 있었다. 이건 또 뭔가, 느낌이 좋지 않았다.
"저기, 우리 비어 있는 반지하방 말이야. 거기 새로 사람들이 온다는데 먼저 통고를 해야 할 것 같아서."오랫동안 비어 있던 그 반지하에 누가 온다니 주인으로서는 좋은 일이겠지만, 왜 모든 세입자들을 다 불러모았는지 어리둥절할 뿐이었다. 마지막으로 온 내가 앉자마자 주인이 다급하게 전말을 쏟아내었다.
"사실 이런 거 일일이 보고 안 해도 되지만, 그래도 같이 사는 처지니까 말인데, 거기 네팔에서 온 노동자들이 들어오게 됐거든. 오늘 낮에 방보고 갔는데 좀 전에 살러온다고 연락이 왔어요. 한 여섯 명이 한꺼번에 방을 쓸 건가봐. 어때? 괜찮지? 요즘 이 동네에 외국인 노동자들이 많잖아. 당장 다음 달부터 온다는데, 너무 이상하게들 대하지 말고, 다 같은 이웃이니까 잘 좀 봐달라고."이주노동자들에 대한 잘난 '동정심'은 저만치 사라지고
옆집 아가씨가 "주여"하고 나지막하게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렸고, 나는 이마를 짚었다. 네팔 노동자라니. 안 그래도 방이 안 빠지는데 네팔 노동자가 여섯이나 들어오면 이 방이 빠지겠는가. 방을 내놓은 지 무려 2년이 넘어가는 옆집 아가씨는 아예 일어나서 나가버렸다. 나는 혼란스러웠다. 네팔. 나는 네팔에 가본 적이 있다. 결혼 전, 네팔의 카트만두에서, 포카라에서, 한국으로 일하러 왔다가 손가락이 잘리고 얻어맞았다고 하는 네팔 사람들을 몇 명이나 만났던가.
그때 그 사람들과 함께 분노하며 한국 사람들이 정말 그래서는 안 된다고 했던 그 잘난 양심과 동정심이 지금은 온데간데 없어지고 말았다. 그들이 들어오면 우리의 방 빼기 전쟁은 어떻게 될까. 점점 더 막막해지는 심정이었다. 나머지 하나의 반지하방 아주머니는 한밤중에 우리 집에 와서는 네팔 노동자들이 못 들어오게 막자고 했다. 무슨 수로? 그리고 그렇게까지 해야 하나?
그저 없는 사람들끼리 전쟁을 하고 있는 이 현실에서 나는 정말, 진지하게, 없는 사람들끼리 정으로 뭉쳐 사람 냄새 풍기며 살 수 있는지 의심하고 또 의심하였다. 분명히 이 동네에 들어오기 전에는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게 무엇인가. 전세값이 하룻밤 사이에 천정부지로 뛰고 역전세 대란이 일어나는 것은 서민의 잘못이 아니다. 농간을 하는 그 누군가는 아마도 잘 살고 있을 터인데, 이렇게 없는 사람들끼리 원수가 되어 싸우고, 이주노동자를 못 들어오게 할 방법을 고안하는 중이라니. 이전까지 믿어왔던 가치관이 무너진 자리에는 오로지 돈만 남은 것 같았다. 그날도 불면의 밤이었고 신랑과 나는 또 소줏잔을 기울였다.
나는 오기가 났다. 여기서 물러설 수는 없다. 아이와 떨어져 지낸 지도 벌써 1년이 다 되어가고, 이렇게 가다가는 인간성도 망칠 것 같았다. 그날부터 인터넷을 뒤졌다. 안 빠지는 방을 빼기 위해 누구는 경품을 걸었다고 하고 누구는 진짜 소송을 걸었다고도 했다. 우리는 일단 가구를 옮겼다. 언젠가 집을 보러왔던 사람이 했던 말, 집이 좁고 어두워 보인다는 말이 생각났기 때문이었다. 조금이라도 집이 넓어 보이게 하기 위해서 문짝을 다 떼어 뒷담 옆의 보일러실에 처박아 넣었다.
좁은 복도에 놓아두었던 냉장고를 작은 방으로 옮겨 복도가 넓어보이게 했고 현관에 가득 찬 신발은 신발장을 사서 대문 밖에 놓아두었다. 그래도 성이 차지 않아 과감하게 침대를 치웠다. 분리된 침대를 양평의 친정집에 보내는 데만 꽤 많은 돈이 들었다. 그뿐이랴. 낡고 낡은 싱크대를 우리 돈을 주고 교체하기까지 했다. 주인이 절래절래 고개를 저었다.
"애기 엄마, 방 빠졌어요"... 여관 잠을 자더라도 나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