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화령에서 바라본 고위봉. 고위봉은 남산에서 가장 높은 봉우리이며, 사진의 오른쪽 가까운 곳은 용장사터가 있는 지점이다.,
정만진
임금은 아버지요, 신하는 자애로운 어머니라,백성을 어리석은 아이라 여기시면백성이 그 사랑을 알리.꾸물거리면서 사는 물생(物生)들이사랑을 먹고 다스려져이 땅을 버리고 어디로 가랴 한다면나라 안이 유지됨을 알리. 임금답게 신하답게 백성답게 한다면나라는 태평하리. 경덕왕이 주문한 노래의 주제는 '왕의 다스림(理)을 받아 편안(安)한 백성(民)'이었다. 하지만 충담사는 '편안한 나라'를 노래했다. 왕과 충담사는 서로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렇지만 경덕왕은 신라 후반기의 전성시대를 이끈 임금다웠다. 그는 자신의 요구와 다른 내용이었지만 충담사의 노래를 '아름답다(佳)'고 여겼다. 그래서 충담사에게 '왕의 스승(王師)'으로 모시려 했다. 충담사는 끝내 왕의 부탁을 사양했다.
안민가, 유교적 노래로 재단하면 옳지 않아안민가는 결코 '충'을 일방적으로 강조한 수직적 가치관의 노래가 아니다. 충담사는 당대 사회의 성격상 왕의 존재를 부정할 수가 없었을 뿐이다. 왕이 왕답고 신하가 신하다우면 백성도 백성답게 그들에게 '충'성할 수 있다는 논리는 사실 얼마나 혁명적인가.
충담사는, 최고 권력자가 지도자답지 못하고, 관료들이 공복답지 못하다면, 일반 국민들은 정치적 행정적 권력 앞에 무턱대고 복무할 수 없다고 말한다. 어찌 안민가가 유교적 노래인가. 안민가를 유교적 노래라고 가르치는 교실은 정치권력에 무조건 복종하라는 반민주적 교육 현장일 뿐이다. 안민가는 지금 이 시대에도 관통하는 민주주의 정치학의 논리를 당당하게 펼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