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s 제공
전기세만 잘 내면 전기를 쓰는 데 지장이 없는 세상이다. 우리는 한 번쯤 높은 전봇대에 올라 전깃줄을 보수하는 헬멧을 쓴 노동자를 본 적이 있다. 그리고 한국전력(이하 한전)이 그 전기를 공급하고 관리한다는 것쯤은 알고 있으므로 당연히 그 노동자는 한전의 정규직 노동자로 여긴다. 이들이 한 달에 1명 이상씩 죽어가고 있다는 사실을 우선 기억하자.
헬멧을 쓰고 전봇대 위에서 일하는 그 노동자들은 전기원이라 불린다. 공급될 전기를 각 가정과 각종 건물에 무사히 연결시키기 위한 배전설비의 설치, 보수, 운영에 이들이 없다면 전기 사용은 불가능해진다. 그런데 이들은 한국전력 소속이 아니다.
전국의 1200여 개(2011년 기준)의 전기공사업체의 소속으로, 상용 또는 일용직의 형태로 근무하는 노동자들이다. 한전이 배전설비관련 사업을 발주하면 이를 수주한 전기공사 업체들이 전기원 노동자들을 고용하고 관리하게 된다. 결국, 전기를 공급하는 자와 유지시키는 자는 여러 차례의 하도급을 거쳐 만나지만, 이들은 직접 관계가 없는 것처럼 보이는 사이다.
2만2900 볼트 전기선에 흐르는 사연2만2900 볼트 전류는 언제나 전기선을 타고 흐른다. 여기서 포인트는 '언제나'다. 어떠한 상황이 닥쳐도 전기원들은 전력이 살아있는 상태에서 일하게 된다. 왜, 이들은 위험천만하게 전류를 흐르게 해놓고 일을 할까?
2012년 3월 전기공사협회 회장의 인터뷰를 보자.
"한전이 지난 1994년부터 원가절감이라는 이유로 배전작업시 시행해 온 직접활선공법에 대한 개선이 필요하다.", "직접활선공법은 작업자의 감전과 추락위험성 등 안전사고의 위험이 높아 미국, 일본 등 선진국을 포함해 국제적으로 사용을 지양하고 있다. 배전공사 현장에 작업정전제로화 및 감전 제로화를 위해 시급히 간접활선 및 가송전공법으로 전환하는 게 시급하다." - '실적 부풀리기 등 허위신고업체 등록취소' 전기에너지 뉴스, 3월 24일자.
안전에 관한 의무가 있지만, 거의 지키지 않는 그들마저 공법이 위험하다고 주장한다. 안전사고 위험이 얼마나 큰지를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산재사망사고가 발생했을 경우 이를 알리면 하면 폐업을 감수해야 하는 업체의 현실로 인해, 결국 그 피해는 고스란히 전기원 노동자에게 남게 된다. 제대로 된 산재 통계하나 갖고 있지 못한 이유이기도 하다. 24%의 원가절감의 대가치고는 너무 가혹하다. (직접활선공사로 인한 원가절감 효과는 24%라고 한다.)
그런데 점입가경이다. 2005년 한전은 '직접송전공법(전선이선공법)' 이라는 신기술을 도입하게 된다. 한 업체에서 개발한 기술을 한전에서 사들여 전체 현장에 도입하게 된 것인데, 현실에서는 전선이 좁은 간격으로 설치되어있어 신기술 사용 시 감전사고 등이 더 발생하는 실정이고, 특히 신기술 사용으로 인한 산재 처리가 되면 다음 입찰에 불이익을 당하기 때문에 이 또한 산재신청이 어려운 실정이다.
'해야 한다'는 있으나 '왜 안 해?'를 안 함, 산재유발자가 된 한국전력거기에, 다단계 하도급 구조는 또 어떠한가? 한전의 '무정전 배전공사 시공업체 관리절차서'를 보면, 총 23조까지의 규정 중 10조부터는 전부 안전관리에 할애하고 있다. 그만큼 전기원 업무에서 안전이 차지하는 비중이 중요함은 한전도 잘 알고 있다. 그런데, 규정만 만들어놓고, 사고가 나면 패널티를 줄 뿐 예방을 위한 관리감독은 전혀 없어, 이는 업체들의 안전에 대한 무관심을 유발하는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한다.
한전은 그동안 전력업체 선정기준 추정 도급액은 늘리되 상시보유 노동자는 늘리지 않아 소규모 업체의 폐업을 유도하며 다단계 하도급 구조를 적극적으로 양산해왔다. 그로인해 일자리를 잃은 노동자들은 일용직으로, 다단계 최하층으로 편입되어 일을 하게 된다. 안전을 넘어 생명으로부터 계속 멀어지는 이동이다. 이 과정에 안전에 대한 관리감독이 전무하니 필연적으로 재해율은 늘어만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