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민석이 트위터에 올린 감사의 인사말
이봉렬
그러면서 그는 자신을 '고슴도치'로 표현했다. 이 글은 후원금 1억5000만 원을 모은 지난 보름 동안에 대한 경과 보고가 아니라, 통일운동가 윤민석이 '고슴도치' 신세가 되어 아내를 살리기 위해 허공에 대고 외치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게 된 그의 삶에 대한 간단한 스케치다.
그간의 경과는 아래 두 링크를 참조.<우린 윤민석에게 진 빚이 있잖아><윤민석씨에게 마음 포개 주셔서 고맙습니다>윤민석은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구속된 적이 있다. 지난 1992년, 이른바 '조선노동당 중부지역당 사건'인데, 조선노동당 중부지역당 산하 단체인 '애국동맹'에 가입하여 북한을 찬양하는 노래를 만들었다는 이유로 징역 3년을 복역했다. 그때 만들었다는 노래가 바로 <수령님께 드리는 충성의 노래>, <김일성 대원수는 인류의 태양> 이다.
김일성 충성의 노래... 그래, 윤민석이 만들었다이 노래는 윤민석의 것이 맞다. (하지만 내가 아는 한, 그리고 그와 이야기 하는 동안 느낀) 그는 통일운동가이자 혁명가일 뿐 주체사상에 물들어 김일성이나 김정일을 맹목적으로 추종하는 인물은 아니다. 두 곡의 제목과 가사는 '의뢰인'이 정해줬고, 윤민석은 곡을 만들었다.
윤민석은 "진정으로 통일운동을 하는 이들은 정작 언젠가 통일이 되었을 때 남과 북 모두에게 버림받을 각오를 하고 일해야 한다"라고 말하는 사람이다. 통일이 되었을 때 남한에서 벌인 통일운동 이력으로 북한 측의 인정을 받으려는 건 거짓 통일운동이라 여기는 사람이다.
그런 그가 어떻게 그런 노래를 만들었을까? "살인마 군부독재와 맞서 싸우던 시절, 무기가 될 수 있는 건 그 무엇이건 들고 싸워야 했었다"는 게 그의 이야기다. 그는 운동을 하면서 두 가지 목표를 세웠다. '제대로 된 친일청산'과 '80년 광주를 만든 살인마 군부독재 세력에 대한 심판'이 바로 그것이다.
그 두 가지 목적을 이루기 위해 운동을 했고 그 목적에 도움이 된다면 누구와도 연대할 수 있었다. 그의 표현을 빌리면 "그 당시의 결기로는 악마와도 거래할 수 있었다." 그 과정에서 힘을 모았던 어느 세력의 요청으로 그 노래를 만들게 된 것이다.
그가 바라는 혁명을 위해 '수령님'을 찬양하는 이들의 도움이 필요하다면, 그들에게 '수령님 찬가' 따위는 얼마든지 만들어 줄 수 있었다. 개신교도들이 혁명에 도움이 되었다면 찬송가도, 불자들의 도움이 필요했다면 찬불가도 만들 수 있었다는 게 그의 이야기다.
하지만 체포된 후 안기부에서 고문을 당하면서도, 재판을 받는 과정에서도 그 이야기는 할 수 없었다. 그는 군부정권의 재판정에서 그 모든 일들에 대한 책임을 온전히 혼자 뒤집어 썼다. 그래서 지금도 그 노래들은 그의 노래일 수밖에 없고, 그 노래를 본 사람들은 그를 '고슴도치'로 여기게 된 것이다. 가까이 하면 내가 찔리게 되는 위험한 고슴도치.
민주화 운동을 하다가 어려운 처지에 처한 이들이 십시일반 서로 도움을 주고받는 중에도, 이른바 종북주의자를 넘어 대놓고 수령님 찬양을 외치는 그에게는 사람들이 가까이 가려 하지 않았다. 윤민석 역시 자신으로 인해 다른 사람들이 찔리고 아파하는 것을 많이 봤기에 스스로 고슴도치라 여기며 몸을 더 움츠렸다.
한국에서는 친일세력과 종북세력 둘 다 나쁘다고 한다. 하지만 친일세력은 욕을 들어 먹을 지 몰라도 나름 잘 산다. 독립운동 했다가 패가망신했던 이들이 "차라리 친일을 할 걸" 할 정도로 잘 산다. 하지만 종북을 하면 인생 망한다. 본인뿐만 아니라 가족 모두가 망한다. 윤민석이 국가보안법으로 잡혀 갔을 때, 그의 부모는 시장에 나갔다가 썩은 배추가 날아 오는 봉변을 당하기도 했단다.
고슴도치처럼 움츠렸는데... 사람들이 다가왔다그럼에도 윤민석은 묵묵히 통일운동을 해왔다. 통일운동을 하면 패가망신하게 될지 알면서도 그 길을 걸었다. 다른 자리 탐내지 않고, 개인의 영달을 꿈꾸지도 않았다. 그는 종북세력이 아니라 통일세력이다. 남과 북 어느쪽 편도 들지 않고 남과 북의 민중들 편에서 통일의 꿈을 노래하는 통일세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