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풍 볼라벤의 위력으로 맥없이 떨어져 내린 대추
최오균
나는 다락방에서 내려와 땅바닥에 굴러다니는 시퍼런 대추를 주어 바구니에 담기 시작했다. 그래도 그동안 나에게 꿈과 희망을 주었던 대추가 아닌가? 설 익은 대추를 주워담는 마음은 아팠다. 그러니 이번 태풍으로 사과, 배, 복숭아 등 과일을 그대로 날려 보낸 농부들의 마음은 어떻겠는가. 아마 숯덩이처럼 까맣게 타들어 가고 있을 것이다.
시퍼런 대추를 한 알 한 알 주워담고 보니 한 말은 족히 될 것 같다. 그 대추를 안고 거실로 들어오니 아내가 입을 벌리며 아연실색하고 만다.
"세상에나! 이 아까운 대추... 이 일을 어쩌지요?""글쎄 말이오. 인터넷을 한 번 뒤져 봐야겠어요. 어디 쓸 때가 없는지."그러고 보면 나는 아직도 설익은 시퍼런 대추인가 보다. 대추가 익기도 전에 붉은 대추를 맛볼 생각만 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인생은 붉게 잘 익은 대추처럼 쪼글쪼글 해질 때 비로소 희로애락의 진면목을 느끼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