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규 어머니 도경미씨(51)
추연만
눈앞에 있지만 너무나 멀리 있는 아이. 불러도 대답하지 않고 울지도 웃지도 말하지도 않는 아이. 내 속으로 낳은 자식이지만 그 어떤 방법으로도 아이와 소통할 수 없다는 것은 엄마를 절망케 했다. 더욱 기운 빠지는 것은 하루하루 최선을 다했지만, 아이는 요지부동 늘 그 자리에 머물러 있다는 점이었다. 다른 가족도, 집안 살림도 다 팽개치고 그저 하루에 목숨 거는 순간들. 그것이 지금까지 살아온 엄마의 삶이었다.
"초등학교 저학년 때의 일인 것 같아요. 영규를 태우고 올림픽대교를 건너고 있는데 뒤에서 난리가 난 거예요. 뭔가를 달라는 것 같은데 말을 못하니 답답하기만 했죠. 그런데 얼마나 절실했던지 차 바닥을 열심히 뒤지더니 뭔가를 눈앞에 바짝 들이대는 거에요. 그 많은 차들이 다니는데 눈을 가리니 얼마나 위험했겠어요. 나중에 보니 컵라면 뚜껑에 붙어 있는 포장지 반쪽이더라고요... 그 상황에 얼마나 화가 났던지 다리를 건너자마자 갓길에 차를 세우고 마구 때렸어요."영규를 태우고 하루에도 네 번 이상 한강을 오고가야 했던 힘든 시기. '핸들을 조금만 꺾어도 영규와 함께 갈 수 있을 텐데'라는 유혹이 늘 마음 한가운데 있었지만 정작 위험을 경험하고 나니 죽음에 대한 부질없는 환상이 사라졌단다. 영규가 삶의 귀중함을 깨닫게 해준 것이다.
"영규를 데리고 여행을 하던 중이었어요. 뒷자리에서 영규가 '싯싯' 소리를 내는 거에요. 조금 열려있던 창문으로 들어오는 바람 소리를 흉내 내고 있었던 거지요. 얼마나 놀랍고 반가웠던지요. 그 자리에서 당장 시옷이 들어가는 문장을 가르치기 시작했어요.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사랑합니다'. 시옷이 들어 있는 노래는 다 불러줬어요. 시옷을 발음할 수 있으니 다른 발음도 낼 수 있을 것이고... 그렇게 하다 보면 말도 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어요."태어난 지 16년 만에 기적적으로 말문을 연 영규. 하지만 대부분의 자폐아들이 그렇듯 언어를 의사소통의 기구로 사용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꾸준한 반복 학습을 통해 자신의 요구(필요)를 전달하는 도구로서 몇 가지의 단어를 사용하는 정도일 뿐이다. 전혀 소리를 내지 않아 청각장애를 의심했던 아이. 그 아이 입에서 처음으로 '음성'이 나오던 순간을 엄마는 잊지 못한다.
"그땐 정말 너무나 행복했어요. 세상을 다 가진 것 같았어요. 제가 늘 그랬거든요. 영규가 말만 하면 모든 것을 다 해 줄 거라고요. 하늘의 별도 따 줄 거라고요."삶의 초점이 오직 영규에게만 맞춰진 엄마에게 영규의 작은 변화와 반응은 삶을 지탱하게 해주는 힘이다. 하지만 엄마가 영규에게 자신의 온 삶을 쏟는 동안 또 다른 가족은 많은 것을 희생하거나 포기할 수밖에 없었던 것도 사실이다.
"어느 날 문득 남편의 양복이 다 해져 있는 게 눈에 보이더라고요. 아내에게 옷 챙겨 달라고 할 형편이 못되니 눈에 보이는 것 하나만 죽어라 입고 다녔던 모양이에요. 원래 (남편이) 아내 손을 많이 필요로 하는 사람이었는데 아들 때문에 그 모든 것을 포기하고 살았던 거죠. 순간 남편이 너무 불쌍한 거예요. 우리에게 울타리가 돼주고 힘이 돼주는 감사한 사람인데... 제가 아무것도 해준 게 없었어요."어디 남편뿐이랴. 엄마는 네 살 터울의 영규 누나도 너무 안쓰럽고 미안하다. 한참 엄마 품에서 사랑받고 귀여움을 받을 나이에 동생에게 모든 사랑과 관심을 빼앗겨버린 딸. 어느새 딸은 성인이 돼 누구보다도 든든한 영규의 지원군이 됐지만 어린 마음에 남겨졌을 상처를 알기에 엄마는 딸에게도 늘 미안한 마음뿐이다.
영규 엄마 경미씨는 세상 모든 것에 미안한 엄마다. 영규의 장애가 엄마의 책임인 것처럼 느껴져 영규에게 미안하고, 영규를 돌보느라 관심을 가져주지 못한 영규 아빠에게도 미안하고 아픈 동생 때문에 어리광 한번 제대로 부려보지 못하고 자란 영규 누나에게도 미안하다. 또, 영규로 인해 불편과 불안을 느꼈을 이웃들에게 미안하고, 불편한 아이를 사랑으로 돌봐 주시는 선생님들께도 늘 미안한 마음뿐이다.
하지만 '정작 영규 엄마 자신에게 미안한 마음을 가져 본 일이 있느냐'는 질문에는 웃으며 고개를 젓는다. 영규 때문에 겪는 가족과 이웃의 불편과 어려움을 이해하지만 엄마인 자신은 아픈 자식을 위해 너무나 당연한 일을 하는 것이기에 늘 씩씩하고 당당하게 감당했을 것이다. 하지만 엄마라고 어찌 늘 씩씩하고 당당하기만 할까. 목까지 눈물이 차올라 금방이라도 터져버릴 것 같지만 어금니를 깨물며 참아왔던 설움들이 왜 없었을까.
세상 끝자락에서 마주한 은행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