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일 오후, 서울 여의도동 금융위원회 건물 앞에서 기자회견을 가진 사채 피해자 강선영(가명)씨.
김동환
"금융감독원이고 경찰이고 법원이고 사정을 말하면 왜 비싼 이자인줄 알면서 썼냐는 얘기만 합니다. 사채업자들에게 모든 재산 다 넘기고 이제는 거지인데 도움받을 곳은 아무곳도 없었습니다."27일, 서울 여의도 금융위원회 앞. 마이크를 잡은 강선영(가명)씨는 눈물이 쏟아지려 할 때마다 목구멍을 조였다. 중산층이었던 단란한 그의 가족이 빚더미에 올라서기까지는 채 5년이 걸리지 않았다. 대부업체에서 빌린 3000만 원이 화근이었다.
27일, 서민금융보호전국네트워크는 대부업법 제정 10년을 맞아 강씨와 함께 기자회견을 가졌다. 이들은 이날 관련법 개정과 불법 대부업자들에 대한 정부당국의 강력한 처벌을 촉구했다.
사채 빌렸다 집·가게 모두 잃어... 딸은 해고에 파혼까지강씨가 처음 대부업체를 이용한 것은 2007년 10월. 경기가 시들해지며 운영하던 복요릿집에 손님이 줄었고, 주택담보 대출로 운영비를 보태면서 버텼지만 상황은 나아지지 않던 차였다. 대부업자들은 자신들이 무등상호저축이라고 하면서 금리도 12% 정도고 매일 조금씩 상환하면 큰 부담이 없다고 했다.
3000만 원을 빌렸는데 통장에는 2700만 원뿐이었다. 수수료 174만 원, 5일치 일수금 62만 9000원, 부동산 설정비 50여만 원을 먼저 제했기 때문. 이자가 싼지 비싼지도 몰랐다. 싸다고 했던 이자는 나중에 알고 보니 연 80%가 넘는 고리대였다.
종업원들 밀린 임금을 주고 나니 3000만 원은 운영비로 쓰기에는 턱없이 모자랐다. 이런 강씨의 사정을 알아챈 사채업자들은 더 싼 이자로 돈을 빌려주겠다며 은행담보대출이 있는 집과 가게 임대계약서를 함께 담보로 잡자고 제안했다. 강씨는 이렇게 돈을 몇 차례 더 빌려 썼지만 큰 이자부담에 사정은 나아지지 않았다.
'사채 돌려막기'는 금방 밑바닥을 드러냈다. 강씨는 "2008년 7월 중순쯤 되니 꼬박꼬박 갚던 일수금도 마련하지 못할 정도로 사정이 어려워졌다"고 털어놨다. 강씨 부부가 일수금을 내지 못하자 사채업자들은 본색을 드러냈다. 강씨 부부를 직접 찾아오고 전화로 협박하는 것도 모자라 아들과 딸의 직장도 찾아가 행패를 부리기 일쑤였다.
고민하던 부부는 경찰서를 찾았다. 그러나 경찰관들은 '비싼 이자 왜 썼냐'는 핀잔 뿐이었다. 우여곡절 끝에 사채업자들을 고발했지만 4명 중 1명만 벌금형을 받고 끝이었다. 서투른 고발의 대가는 컸다. 사채업자들은 강씨의 집을 경매에 넘기고 그들 부부를 사기죄로 고발했다. 그 와중에 강씨의 딸은 장소를 가리지 않는 사채업자들의 빚 독촉에 직장을 잃고 파혼까지 당했다. 강씨가 교통사고로 받았던 보험금 6000만 원도 고스란히 사채업자들의 몫이었다.
강씨 부부는 현재 집과 가게 보증금을 모두 빼앗기고 월세 방에서 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60이 넘은 강씨의 남편은 택배 배달로, 교통사고 후유증으로 4급 장애인이 된 강씨는 경기도 용인의 한 지퍼백 포장공장에서 일당을 받으며 생활비를 번다.
아들, 딸은 결혼 적령기를 훌쩍 넘겼지만 각자 빚 갚기도 벅차 결혼은 꿈도 못 꾼다. 어머니를 돕느라 또 다른 대출을 받았던 아들은 원금 상환은 엄두도 못 내고 겨우 이자만 갚아 나가고 있다. 살려고 빌린 돈 갚느라 죽어가는 이들 가족에 귀기울이는 사람은 없었다. 강 씨는 "경찰, 검사, 판사, 금감원 중 아무도 우리 얘기를 들어주지 않았다"면서 "버림받았다는 느낌이었다"고 털어놨다.
"서민에 사금융 추천해온 정부 정책 기조부터 바꿔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