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톡으로 떨어지는 미션, 낙오될 뻔 했어요

[스마트폰 삼천만 시대] 여전히 2G 핸드폰 사용, 감성은 '충만'

등록 2012.09.01 21:48수정 2012.09.01 21:48
0
원고료로 응원
【오마이뉴스는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생활글도 뉴스로 채택하고 있습니다. 개인의 경험을 통해 뉴스를 좀더 생생하고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습니다. 당신의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출판사 편집자라는 직업 때문에 생긴 묘한 취미거리 중에 하나는 지하철에서 사람들이 읽고 있는 책이 무엇인지 알아맞히는 것이다. 어떨 땐 읽고 있는 페이지 속 문장을 보고 단번에 아는 경우도 있고, 어떨 땐 아무리 고개를 이쪽으로 돌렸다 저쪽으로 돌려가며 가자미 눈을 하고 책을 노려봐도 알 수 없어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상대방에게 물어볼 때도 있다. "저, 읽고 계신 책이 뭔가요?" 라고.


그러나 최근 불과 1-2년을 사이에, 내가 사랑했던 취미생활을 쉽게 할 수 없게 되었다. 싫증났냐고? 아니. 그냥 지하철 안에서 책 읽는 사람을 쉽게 찾을 수 없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무거운 책과 '안녕'한 대신 만원 버스나 복잡한 지하철 안에서도 가벼운 스마트폰을 들고 있다.

책이 재미없을 만도 하다. 손바닥만 한 액정엔 얼마나 무궁무진한 세계가 들어 있는가. 검색도 하고, SNS를 통해 사람과 소통도 하고, 앵그리버드로 스트레스도 풀고, 스머프도 길러내야 하니, 사실 손가락에 침 묻혀가며 책 읽는 시간이 없어지는 건 당연할 수 있다.

갈아타지 않아 눈총받는 뒷방 늙은이, 난 2G '유저'

 사용중인 2G 핸드폰
사용중인 2G 핸드폰박진희

스마트폰 3천 만 시대가 열렸단다. 즉, 스마트폰은 이제 세상 사람의 절반 이상에게 필수품이 되었다는 의미다. 그런 세상에서 나는 아직 2G 휴대폰 유저다. 스무 살 대학 입학 기념으로 파워 017을 개통한 이래 10년이 넘게 한 번호를 쓰고 있는 나는 자나 깨나 고집 있는 2G 사용자다. 옛날엔 장기사용 우수고객으로 핸드폰 요금도 할인 받았지만, 지금은 010, LTE로 갈아타지 않아 눈총 받는 뒷방 늙은이가 되었다.

친구들을 만나면 "아직도 그거 쓰냐" 혀 내두르는 소리를 들어야 했고, 어린 조카들은 이모 핸드폰은 재미없다며 갖고 놀지 않는다. 그보다 더 어린 꼬맹이들은 손가락으로 내 핸드폰 액정을 밀어보고 당겨보나, 바뀌지 않는 화면에 "고장 난 거 아니에요?"하고 묻기도 한다.


그래, 그렇다. 2G 핸드폰은 전송된 문자 길이가 조금만 길어도 로딩 시간이 엄청나다. 무료 와이파이존에 있어도 메일 따위는 확인할 수 없으며, 내가 탈 버스가 언제 오는지도 확인할 수 없다. 그럼에도 내가 아직까지도 꿋꿋하게 스마트폰을 갈아타지 않는 이유는, 그 속도가 주는 이기심에 마음 다치는 일들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얼마 전 수련회를 갔는데, 수련회 일정의 대부분이 미션을 받아 수행하는 일들이었다. 런닝맨이나 무한도전처럼 단체 채팅방에서 카카오톡으로 떨어지는 미션들을 재빨리 수행하는 팀이 1등을 하는 그런 프로그램이었다. 단체였기에 망정이지, 개인플레이를 했다면 나는 그 프로그램 자체에 아예 참가하지 못했을 것이다. 모두들 스마트폰 액정을 검지손가락으로 이리 밀고 저리 밀고 하면서, 우르르 지령을 향해 달려갔다.


끝나고 나서도 나란히 누워 손에서 핸드폰을 놓지 않았다. 바로 옆에 있는 사람과도 카카오톡으로 채팅하는 것이다. 물론 조가 다른 옆방 친구와도 함께 이야기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긴 하지만, 침묵 속에 바삐 손가락만 움직이고 있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니, 마치 나만 알아들을 수 없는 대화를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스마트폰의 장점은 아무래도 쏟아지는 정보를 빨리, 손쉽게, 공유할 수 있다는 점일 것이다. 웬만한 언론 기사들은 스마트폰 유저들의 트윗과 페북으로 팁을 얻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유저들은 입을 다무는 대신에 손가락으로 부지런히 수다를 떨기 시작했다.

손가락이 아닌 입으로 하는 이야기가 좋다

하지만 아직까진 신속하게 올라오는 정보들이 모두 유용한 것이 아니란 게 내 생각이다. 오히려 차라리 몰랐으면 좋았을 법한 이야기들도 많이 쏟아진다. 스마트폰 뉴스를 통해 개똥녀(개똥 치우지 않고 가버린 여자), 커피녀(옆사람에게 커피 쏟고 도망간 사람) 등 전국 곳곳에서 일어나는 엽기적인 일들이 실시간으로 올라온다.

심지어 일대일 관계에서 메일이나 만남, 전화를 통해 충분히 해결할 수 있는 문제도 공론화 되는 경우가 있다. 서로간의 오해를 풀고 당사자에게 사과를 받는 것이 아니라, 문제를 제기하면 앞뒤정황을 모르는 제3자들이 훈수를 두는 식이다. 그 방식은 가장 빠른 방법이긴 하나, 가장 옳은 방법인지는 사실 모르겠다.

손바닥만 한 스마트폰 세계에 갇혀 많은 것을 알아내지만, 그것을 이해하려고는 생각지 않는 사회가 조금 무섭다. 2G를 사용한다고 시대를 따라가지 못해서 불편한 것은 아직까지 크게 없다. 남들처럼 핸드폰으로 사진을 찍어 바로 메일로, 소셜네트워크 속으로 전송하는 일이 좀 번거로워서 그렇지, 굳이 보고 싶지 않고, 듣고 싶지 않은 일들에서 자유할 수 있어 오히려 고맙다.

서로 마주 앉아 자신의 스마트폰만 쳐다보고 있는 상황에서 벗어나 친구 눈을 보고 이야기할 수 있어서 좋다. 이미 카카오스토리에, 페이스북에 올라가 있어 만나면 딱히 할 말도 없다는 사람들에 비해, 무궁무진한 내 일상을 손가락이 아닌 입으로 이야기할 수 있어서 좋다.

곧 2G 망은 역사 속으로 사라질지도 모르겠다. 그때는 어쩔 수 없이 스마트폰으로 바꿔야하겠지만 그때가 조금 더디 왔으면 좋겠다. 아직은 아날로그 감성이 충만한 시간을 누릴 수 있어 기쁘다.
#스마트폰 #2G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낙담도 순식간에 뒤집어 즐겁게 살 줄 아는 인생의 위트는 혹시 있으면 괜찮은 장식이 아니라 패배하지 않는 힘의 본질이다. 쪽!


AD

AD

AD

인기기사

  1. 1 어린이집 보냈을 뿐인데... 이런 일 할 줄은 몰랐습니다 어린이집 보냈을 뿐인데... 이런 일 할 줄은 몰랐습니다
  2. 2 "한 번 씻자고 몇 시간을..." 목욕탕이 사라지고 있다 "한 번 씻자고 몇 시간을..." 목욕탕이 사라지고 있다
  3. 3 "2천만원 깎아줘도..." 아우디의 눈물, 파산위기로 내몰리는 딜러사와 떠나는 직원들 "2천만원 깎아줘도..." 아우디의 눈물, 파산위기로 내몰리는 딜러사와 떠나는 직원들
  4. 4 한강 작가를 두고 일어나는 얼굴 화끈거리는 소동 한강 작가를 두고 일어나는 얼굴 화끈거리는 소동
  5. 5 49명의 남성에게 아내 성폭행 사주한 남편 49명의 남성에게 아내 성폭행 사주한 남편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