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eeda Harris Baptist Center침례교회에서 행사나 운동회 용도로 쓰는 체육관. 평소에는 자전거 여행자를 위한 훌륭한 숙박시설이 된다.
최성규
애팔래치안 산맥이여, 안녕. 목줄 없는 개들과 지나는 차들은 여전히 위협적이지만 발걸음은 새롭다. 켄터키 주에 입성하자마자 반가운 쉼터가 눈에 띈다. 한 침례교회에서 자전거 여행자들에게 체육관을 숙소 대용으로 제공하고 있다. 이렇게 3일째 종교의 힘을 빌어 지친 몸을 뉘일 공간을 마련한다.
텃세가 심한 켄터키 주 차량들... "미친 운전자가 많아, 조심해"6월 4일 월요일Lookout, KY - Hindman, KY50 mile ≒ 80 km여행자 숙소 찾는 재미가 쏠쏠하다. 무료인데다가 서로 다른 특색으로 자전거 라이더의 오감을 만족시켜준다. 어제 잠을 청했던 체육관은 샤워실을 갖추고 있어 땀에 절어버린 몸뚱아리가 때 아닌 호강을 했다. 방명록에 기록을 남기며 감사 인사를 대신한다. 자전거 라이더는 그 외 흔적을 남기지 않고 조용히 떠나간다.
한껏 충전된 체력으로 자전거를 탄다. 주 경계선 하나 바뀌었을 뿐인데 벌써부터 텃세가 시작되었다. 켄터키 주 차량들은 버지니아 주에 비해 거친 편이다. 보통 급한 커브길에서는 차량들이 추월하는데 주저함을 보이거나 속도를 한껏 줄인 채 부드럽게 다가왔다. 이 곳은 물이 다르다. 경적도 없이 옆으로 치고 나가는 트럭이 백미러에 우악스럽게 비친다.
켄터키 주로 진입하면서 나에게 새로운 일정이 생겼다. 결혼 직후 미국에 와서 몇 년째 사는 사촌형님이 켄터키 렉싱턴 근처 윌모어(wilmore)에 있기 때문. 이역만리 타국에서 반가운 친척을 만나기 위해 새롭게 동선을 짰다. 며칠 후 만남을 위해 오늘은 50마일 떨어진 힌드만(hindman)까지 가야한다.
버지(Virgie)라는 마을에서 좌회전해서 SR 122번 남쪽 노선으로 진입해야 한다. 진입 표지판을 보지 못하고 얼떨결에 앞으로만 달리다보니 어느덧 10마일을 코스에서 벗어나버렸다. 제대로라면 7.5마일 거리에 있는 멜빈(Melvin)에 진즉 도착해야 했다. 반대방향인 SR 122번 북쪽 노선으로 잘못 들어선 결과다.
"거리에 미친 운전자들이 많으니 조심하라구."지나가던 행인은 길을 가르쳐주며 불안한 인사를 건넨다. 이거 뭐, 평소보다 10마일 적게 간다고 좋아했더니, 되려 20마일을 추가하게 생겼다. <아메리카 자전거 여행>을 썼던 홍은택 작가님이 몇 십 마일을 되돌아가며 느꼈던 심정이 이제야 이해된다.
돌아가는 길은 그전과 전혀 다른 모습으로 다가온다. 낯설게 느껴지는 주변을 보며 공간은 보는 시점에 따라 새롭게 변모함을 알게 된다.
절반쯤 되짚어 갔을 무렵, 근처 가정집에서 누군가 손을 흔든다. '드링크? 드링크?'를 외치는 목소리가 나를 불러 세웠다. 친절함으로 잔뜩 무장한 아저씨는 갓 냉장고에서 꺼내온 캔 음료를 두 개나 쥐어주었다. 올해 60세가 된 레이 칠더스(Ray Childer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