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 포털의 한 기간제교사 카페. 하루에도 상당수의 채용관련 글이 올라온다.
인터넷갈무리
그렇다면 이처럼 관련법 위반 의혹을 남기면서 사립학교들이 정교사가 아닌 기간제교사를 채용하는 이유는 대체 무엇일까. 가장 먼저 생각해볼 수 있는 것은 비용 절감이다. 하지만 우리나라 사학의 교사들은 준공무원으로 사립학교에 소속됐다고 해도 급여는 학교법인이 아닌 교육청에서 지급된다. 그러니 비용문제만으로는 설명이 안 된다.
사립학교에서 기간제교사로 근무하며 희망고문을 겪어본 이들은 "마음대로 부릴 수 있기 때문"이라고 입을 모은다.
S고에서 희망고문을 겪고 이른바 '토사구팽' 당한 박씨는 자신에게 '1년 뒤 정교사 발령'을 약속했던 당시 S고 교감에게 학교를 떠난 뒤 "왜 나에게 그런 약속을 했느냐, 정교사 약속이 없었다면 나는 기간제교사 근무를 아예 시작조차 하지 않았을 것"이라며 항의한 적이 있었다. 이에 교감은 "그것이 사립학교의 상식"이라는 말을 꺼냈다. 박씨가 상식의 의미가 무엇인지 묻자 교감은 "정교사 약속이 있어야 기간제교사들이 최선을 다해 일한다"며 "그래서 우리 학교뿐 아니라 모든 사립학교들이 이렇게 하는 것이고, 그것이 이(사립학교) 바닥의 상식"이라고 설명했다.
S고 교감이 말하는 '사립학교의 상식'은 기간제교사들 사이에서 그리 새로운 것이 아니다. 사립학교 기간제교사를 경험한 많은 이들이 '정교사 임용을 생각한다면 기간제교사 근무 동안 귀머거리, 벙어리가 돼야 하는 것이 현실'이라고 고백한다. 이들에 따르면 관리자들의 눈 밖에 나지 않기 위해 기간제교사들은 시키는 일은 무엇이든 해야 한다. 과도하고 무리한 업무들이 부여돼도 거부할 수 없으며, 학교법인 비리나 부당한 학교 운영을 목격해도 맞설 수 없다.
한편, 상대적 약자인 기간제교사는 같은 교사들 사이에서조차 악용되기도 한다. 학교법인, 관리자뿐만 아니라 정교사들 역시 기간제교사를 이용하기도 한다는 이야기다. 서울 D고에서 1년간 기간제교사로 근무한 노아무개씨는 "학교 측이 교문지도 등의 학생생활지도, 야간자율학습지도와 같은 고된 업무들을 기간제교사들에게 떠넘겨버렸지만 이를 부당하다고 말하는 정교사는 없었다"며 "그들은 오히려 기피 업무가 기간제교사들에게 넘겨지는 걸 반기는 눈치였다, 또 자신의 업무조차 순종적인 기간제교사에게 떠넘기는 정교사들도 있었다"고 회상했다.
기간제교사에게 업무를 과도하게 부여하기로 소문이 자자한 경기도 소재 K고등학교. K고는 기간제교사들에게 기숙사 사감 업무를 겸임시킨 바 있다. 학교에서 수업과 업무에 최선을 다하는 것 외에 학생들이 잠드는 새벽까지 기숙사에서의 생활을 지도해야 하기에 이들에게는 개인생활이 거의 없었다. 이에 대해 이 학교에서 십여 년간 정교사로 근무했던 이아무개씨는 "우리 학교는 기간제교사들에게 많은 일을 시키지만, 그래도 근무 성적이 우수한 이를 정교사로 발령내기도 했다"며 K고를 '약속을 지키는 양심적인 학교'로 평가했다.
그러나 전교조 사립위원장 노년환 교사는 입장이 달랐다. 그는 "교사에게 기숙사 사감 등을 겸임시키면서 이에 순응한 이를 정교사로 발령냈다는 것은 과도하게 업무를 부여하기 위한 사립학교의 전형적인 꼼수"라고 비판한다. 이어 "그것이 복종형 교사를 만들어내는 과정이기도 하다"고 덧붙인다.
노 교사에 따르면, 학교와 동료교사들 사이에서 복종적인 기간제교사 근무 기간을 거치게 되면 정교사가 돼도 완전히 자유로울 수 없다. 여전히 선배 정교사들의 기피 업무를 떠맡기 일쑤며 전교조 등 교원단체 가입 조건을 갖춰도 대부분의 '길들여진 정교사'들은 전교조 가입은커녕 조용히 생활하게 된다. 학교법인이나 관리자 등의 불법과 비리·비민주적 운영을 목격해도 역시 조용히 못 본 척, 못 들은 척 하게 된다. 그래서 노 교사는 "사립학교에서 기간제교사 근무 후 발령을 내는 관행은 결국 '길들이기 과정'과 같다"고 꼬집은 것.
사립학교 희망고문이 채용 비리로 이어지기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