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양대군> 겉표지
청년정신
어떤 책에서 읽었는지 가물가물하지만, 오래전 사관들이 사초를 목숨처럼 여겼다던가. 그런지라 제아무리 하늘처럼 높은 왕이라 할지라도 사관들의 기록만큼은 함부로 건들지도, 고치지도 못했다던가와 같은 글을 읽은 적이 있다.
그리하여 때론 조선시대의 역사기록에 대한 정신과 자세가 감탄스럽기도 했다. 아무리 그렇기로 그래도 사람인데 자신의 실수나 허물을 그대로 적어 후손에게 남기는 것을 어떻게 그리 쉽게 받아들일 수 있을까. 선대왕들이 그랬다는 것만으로 자신 역시 그럴 수 있음이 아무래도 이해되지 않는 한편 감탄스러웠던 것이다.
자연 <조선왕조실록>이 어느 정도는 진실에 가까울 것이라 믿어온 것 같다. 그런데 <조선왕조실록>이 아예 필요에 따라 수정되었다는 것, 나아가 수양대군의 왕위찬탈과정 등을 기록한 <세조실록>은 애초부터 아예 왜곡되어 기록되었다는 저자의 말은 여간 실망스러운 것이 아니다. 오늘날 수많은 역사물들이 <조선왕조실록>을 근거로 쓰여 지고 있기에.
사관이나 실록을 편찬하는 사람들도 사람인만큼 어느 정도의 착오는 있을 수 있다. 그런데 저자의 말처럼 아예 승자의 입장에서 왜곡되어 기록된 것이라면 문제는 달라진다. <세조실록>이 애초부터 승자에 의해 왜곡되어 기록된 것이라면 수양대군과 그를 둘러싼 역사가 생각이상으로 왜곡되었을 가능성이 많은 것이다.
<조선왕조실록> 탐구해온 저자가 말하는 '계유정난'그렇다면 계유정난과 수양대군의 진실은 무엇일까? 수양대군은 과연 역사의 승자일까? 아니면 패자일까? 그도 저도 아니면 시대가 요구하는 권력의 희생물에 불과할까? 왕좌를 차지한 후 그가 했다는 말처럼 과연 정말 '사직을 위한 어쩔 수 없는 천명'이었을까? 혹 자신의 권력욕을 포장하기 위한 궁색한 변명에 불과하지 않을까? 수양대군은 정말 조선왕실과 나라를 위해 어쩔 수 없이 그 많은 사람들을 죽였던 걸까?
소설 <수양대군>은 애초부터 어느 정도 왜곡되어 기록된 <조선왕조실록>-<세조실록>의 기록들을 바탕으로, 수양대군 하면 자연스럽게 떠올릴 수밖에 없을 정도로 우리 역사에 오점으로 남아 있는 계유정난, 즉 수양대군의 왕위찬탈에 얽힌 진실을 찾아나서는 여정이다.
저자는 수양대군 역시 '피비린내 나는 드라마의 배우에 지나지 않을지도 모른다'며 수양대군이 권력을 잡기 직전인 계유년 어느 날부터 단종이 청령포로 유배된 직후까지, 음모술수가 횡행하고 피비린내 진동했던 그 3년간의 진실을 긴박하게 들려준다. 그리하여 독자들이 수양대군과 권력을 향해 부나비처럼 몰려들었던 인간 군상들의 진실에 가까이 닿게 한다.
<수양대군>을 읽으며 한편으로 생각난 것은 1993년에 읽은 <소설 한명회>(전7권)(신봉승 저, 갑인출판사,1992년)다. 다들 짐작하는 것처럼 <수양대군>과 역사적 배경이 같다. 20년 전에 읽은 책임에도 책의 신변까지 시시콜콜 기억할 정도로 재미있게 읽었던지라, 비록 피로 얼룩진 패륜의 역사지만 인상 깊게 남고 있는 책이다.
그런데 올 여름 <수양대군>을 통해 다시 만나게 된 '계유정난(1453년, 단종1)과 그 전후 3년'이 자꾸 씁쓸하게 맴돌고 있다. 단언하건대, 이유는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 경선 후보는 16일 박정희 전 대통령이 주도한 5·16 쿠데타와 관련해 '아버지로서는 불가피하게 최선의 선택을 한 것'이라며 '바른 판단을 내렸다'고 말했다"는 기사(7.16일자 한겨레)를 접한 후에 읽었기 때문이다.
솔직히 이 기사를 읽기 전까지 수많은 피를 부른 수양대군의 '계유정난'과 '5·16 쿠데타'를 연관시켜 본 적이 없다. 기사 속 발언을 몰랐다면 <수양대군>은 어떻게 읽혔을까. 책을 읽은 지 보름, 그동안 둘은 계속 겹쳐 떠오르고 있다. 애초부터 승자의 입맛에 맞게 왜곡된 <세조실록>과 '5·16 쿠데타'에 대한 변명이 같이 들린다면 지나친 비약일까. 1450년대 당시 사람들에게 계유정난의 피비린내는 무엇이었을까. 우리에게 '5·16 쿠데타'는 무엇일까. 여전히 생각이 분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