늙지 않는 그, 우리만 이렇게 달라졌다

대구 방천시장, 가수 김광석 벽화골목

등록 2012.08.17 10:08수정 2012.08.17 2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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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사람은 더 이상 나이를 먹지 않는다. 게다가 그 죽음은 이루지 못한 꿈에 대한 애틋한 갈증이 더해져서 남은 자들에게 더욱 각별함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그는 자살하던 날 저녁에도 전혀 낌새를 보이지 않았다 한다. 가족들과 TV 보면서 농담을 주고받으며 하루를 마감했고, 다음날 아침에 자택 실내 난간에 목을 매고 죽은 채 발견됐다 한다. 그 죽음에 관해서는 분분한 이야기가 있다. 하지만 그것과 상관없이 대중에겐 요절한 천재 가수 김광석으로 기억될 뿐이다.


 가수 김광석 벽화
가수 김광석 벽화조을영

여기, 대구 수성동에 김광석을 기리는 골목이 있다. 작은 골목 하나만이 아니라 방천시장 전체가 김광석을 기리는 공간으로서, 익살스럽거나 혹은 그윽한 감성을 가진 벽화들 안에서 그는 여전히 살아있다. 이 시장 한 켠에서 전파사를 하던 아버지의 재롱둥이 아들로서 잠시 살았던 대구를 알리며, 김광석은 오늘도 방천시장을 지키고 있는 것이다.

'김광석 보리밥집', '김광석 건어물전' 등 이 시장 많은 상인이 '김광석'이란 브랜드를 걸고 장사를 한는 것도 공통점이다. 그의 이름을 내건 보리밥집에는 마실 나온 노인들이 막걸리 한 사발을 앞에 두고 혼자 낮술을 하기도 하고, 손님 없는 건어물전에는 길고양이들만 호시탐탐 처마 밑의 북어를 노리고 있다.

'셋방 있음', '개조심' 같은 정겨운 글들이 써진 종잇조각이 붙은 대문. 그 앞에선 무료한 시간을 달래는 노인들이 평상에 앉아 삶의 타래를 풀어내기 바쁘고, 시장 안 빈 점포들을 빌려 작업실을 꾸민 작가들은 문을 꽁꽁 닫아걸고 어딜 출타한 것인지 보이질 않는다.

골목길 저 너머론 고층아파트의 정수리가 불끈 솟아있지만 이 골목만큼은 여전히 과거를 간직한 채 멈춰 섰다. 최근에는 선진국의 전통시장 활성화 대책을 모방해서 화가들에게 작업실을 무료 임대해주고, 그 혜택을 입은 이들은 시장 상인들과 공동 프로젝트를 펼치고 있다. 한마디로 상인과 작가들이 시장이란 거대한 도화지 위에 창작품을 만들어가는 것이다.

특히 시장 자체를 하나의 설치작품으로 만들려는 의도가 두드러지지만 그 무엇보다 '김광석 벽화 골목'에 기울이는 애정이 가장 돋보인다. 그 중 상인들의 젊은 시절과 김광석의 사진을 섞어 걸어둔 '김광석 길'은 전국의 아마추어 사진사들이 모여드는 명소가 됐다.


상인들 젊은 시절과 김광석 사진 건 '김광석의 길'

 대구 방천시장
대구 방천시장조을영

하늘에 걸린 자신의 사진이 부끄럽다는 보리밥집 여인. 그저 '현이 엄마'라고만 밝혀줬더라면 하고 얼굴을 붉힌다. 김광석과 동갑이라 더 각별하다는 그녀는 찾아든 노인들에게도 얼마나 살뜰한지, 수박 한 쪽이건 김치 한 쪽이건 살갑게 권하며 정을 낸다. 대통령 내외가 그들에게 보낸 '여러분, 힘내세요'라는 글귀가 무색해질 정도로 가게 안엔 정이 넘쳐난다.


그 시절, <흐린 가을 하늘에 편지를 써>를 부르며 청춘들은 삶을 이야기했다 한다. 지독히 광활한 그 숲에서 때론 젊음에 겨워 헤매고, 때론 자신만을 비춘다고 여기는 황홀한 별빛을 따라 너나 할 것 없이 그 고통의 숲을 도망쳐 나왔다고 했다. 이윽고 격렬한 숨 한 번 들이쉬고 나자 머리 희끗한 장년이 되어 지금에 섰다는 것이다. 지난 시절 자신의 아픔과 함께 한 김광석이기에 그리움으로 기억할 것이란 말을 덧붙이며, 여자는 먼 곳으로 시선을 주었다.

 가수 김광석 동상
가수 김광석 동상조을영

문득 영화 <첨밀밀>이 떠올랐다. 장만옥과 여명이 타국 생활의 힘겨움에도 굴하지 않은 데에는 단 하나의 공통점이 있었으니, 그건 바로 국민가수 등려군의 노래였다. 타국에서 서럽게 돈을 벌면서도 그들 마음 한 켠에는 굳건한 한 사람의 영웅이 있었던 것이다. 그에게 다가갈 순 없지만 언제나 상처받고 고통스러워하는 자들의 곁에서 그는 노래 부르고 있었다. 라디오건 티비건 어디서건. 그리고 영웅의 죽음과 자신의 고난을 동일시하며 그 가련한 이들은 울고 힘겨워했다.

떠나간 사람은 나이를 먹지 않는다. 영원히 그 나이 그대로, 살아생전 보다 더 거룩한 이름으로 새로운 역사를 얻을 뿐이다. 그리고 요절한 가수 김광석은 대구 방천시장에서 새로이 태어나는 중이다.
#김광석 #방천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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