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드라마 <넝쿨째 굴러온 당신> 중 한 장면. 가깝고도 먼 것이 시댁 식구 아닐까.
KBS
우리 형님은 원래 내가 싫어하는 두 가지를 가지고 있다. 비아냥대는 말투와 볼 때마다 한 가지씩 트집을 잡는 버릇. 그런데 우리가 친구 사이가 되고 나니 그 행동을 바라보는 내 시각이 먼저 바뀌더라. 비아냥대는 말투는 9살 차이나 나는 남편과 살면서 어리광이 밴 목소리가 그렇게 들렸던 것 같고, 볼 때마다 한 가지씩 트집 잡는 행동은 트집이 아니었다는 것, 배려와 관심이었던 것이다. 표현력 부족에서 온 오해였다.
양평 집 본채와 별채, 그렇게 아래윗집에서 산 지 두 달 동안 거의 따로 생활하기 때문에 하루에 한 번 보면 잘 보는 관계다. 가끔 멸치볶음이나 아욱국이 이 집 저 집으로 오가기는 하지만 부딪칠 일은 거의 없다. 그런데 다행히도(?) 윗집에는 세탁기가 없어서 그 핑계로 아래채에 빨래하러 오는 형님을 내가 붙잡고 같이 차를 마시곤 한다.
이렇게 조금씩 가까워진 우리 둘. 대화를 나누면 나눌수록 아주 딴 사람을 만나는 것만 같아 좋다. 책을 좋아하고 클래식 음악을 즐겨듣는 조용한 여자. 고집이나 아집도 없고 남의 말도 경청해 듣는 아주 괜찮은 사람이다. 둘이 이런저런 속의 말을 나눴지만 시집 식구들 얘기가 나오면 내가 의도적으로 회피한다. 기껏 좋은 느낌의 인상이 시집 얘기를 사이에 두고 부정적인 감정이 끼어들까 두려워서다. 다 된 빨래를 가슴에 안고 윗집으로 가는 형님의 뒷모습. 매 끼니마다 건강식으로 챙기며 병구완하시느라 애 쓰시는 마음. 같은 여자로서 안타깝고 짠하다.
대부분의 형님 나이 여자들 인생이 다 그렇고 그렇겠지만 그다지 넉넉하지도 않은 살림살이를 꾸려오면서 자기 삶에 그리 만족하며 사시지는 않았겠지 싶다. 불만을 속으로만 참는 성격인데다가, 지금 70 중반이 되신 아주버님도 자기중심적인 전형적인 가부장제 남편이기에 지레짐작하는 거다. 남편의 누님만 아니었다면 푸근한 느낌의 대학 선배인 형님을 내가 선배님이라 부르며 잘 따랐을 것 같은데. (원래는 남편의 누님이기에 더 잘 따라야 하는 거지만…)
며칠 전이다. 무슨 말 끝에 아주버님이 "우리 부인은 그런 거 하나도 몰라요, 맹꽁이예요"했다. 그때 갑자기 시누이가 아닌 선배님, 아니 여자를 비하하는 거 같아서 속에서 화가 확 치밀었다.
"에이, 형님은 집에서 살림만 했으니 모르시는 게 당연하죠. 대학 때까지는 아주버님이랑 비슷하셨을 거 아니에요. 형님 다니신 학과가 제가 다닌 학과보다 공부 훨씬 잘해야 들어갈 수 있어요. 만약 지금 맹꽁이라면 같이 사시면서 변하신 거 아니에요?" 아이고 요 입방정을 어이할꼬. 늘 여자 편이었듯이 완전~ 시누이 편이다. 나와 시어머님과도 이런 관계가 가능은 할까. 가볍게 별 뜻 없이 내뱉는 말도 시집식구라는 선입견을 가지고 듣기에 그리 고깝게 들렸던 것은 아니었을까.
아침에 형님네가 중간 검진을 위해 서울대학병원에 가셨다. 두 밤 자고 오신단다. 늘 불을 밝게 켜놓고 계시던 집. 달빛도 없는 어두운 밤이라 그런지 집 형체도 보이지 않는다. 쓸쓸하다. 가을이 되면 병이 다 나으셔서 가실라나. 병이야 빨리 나으셔야 되겠지만 음~ 가을엔 떠나지 말라는 노래도 있던데. 차라리 하얀 겨울에 떠나시면 좋겠다. 그런데, 두 밤씩이나 서울서 잘 필요가 있을까. 병원 갔다 그길로 이곳에 내려오셔도 될 터인데. 벌써 보고 싶다, 우리 형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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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누이와 '아래윗집' 두 달 붙어 살았더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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