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과 바다> 아직도 안 봤어?

[공연리뷰] 뮤지컬 <노인과 바다>

등록 2012.08.13 21:10수정 2012.08.13 21:10
0
원고료로 응원
아무도 없는 망망대해에서 홀로 거대한 물고기와 상어 떼들, 그리고 자신과 혹독한 싸움을 싸워내는 노인의 고독한 투쟁 속 깊은 의미를 담은 어니스트 헤밍웨이 원작의 <노인과 바다>. <노인과 바다>는 1953년 헤밍웨이에게 퓰리처상을 안겨주었고, 이듬해 그의 노벨문학상 수상에도 결정적 역할을 한 대작이다.

대작을 소극장의 작은 무대에 밀도 있게 담아낸 뮤지컬 <노인과 바다>. 지난해 김진만 연출에 의해 제작되어 이미 큰 호평을 받은 연극 <노인과 바다>가 올해 초 동명의 뮤지컬로 각색되어 다시 한 번 극찬을 받고 있다.


뮤지컬 <노인과 바다>는 친절하다. 관객 한 명 한 명과 하이파이브를 하며 흥겨운 분위기 속에 극의 막을 여는 소년 역의 배우는 관객의 이해를 돕기 위해 간단한 설명을 해주기도 하고 과묵한 노인의 심경을 대신 말해주기도 하며 극을 이끈다. 그 덕분에 미리 원작을 읽지 않은 관객들도 쉽게 스토리를 이해할 수 있다.

노인 산티아고는 84일간 물고기를 한 마리도 잡지 못했다. 마을 사람들은 그에게 액운이 끼었다고 수군거리고, 그가 다섯 살 때부터 함께 배를 타며 낚시를 가르친 소년 마놀린마저 부모님의 권유로 다른 배에 옮겨 탄 상태다. 게다가 그 후 소년은 첫 주에 큼직한 물고기를 세 마리나 낚았다.

85일째 되던 날, 노인은 소년이 구해다 준 미끼를 가지고 배에 오른다. 그는 다른 어부들은 가지 않는 깊은 바다에 이르러서야 바다 깊은 곳에 줄을 내린다. 비록 늙고 쇠약하지만 그에게는 자신이 아주 커다란 물고기를 잡아 돌아갈 것이라는 확신이 있다.

이윽고 줄이 움직이기 시작하고, 그 억센 힘에 노인은 아주 큰 물고기임을 확신한다. 물고기는 계속해서 배를 끌고 어디론가 향한다. 노인은 끌려갈 수밖에 없지만 자신이 최후의 승자가 될 것임을 확신하며 온 힘을 다해 줄을 잡고 버틴다.

바다에 나온 지 셋째 날, 마침내 수면에 떠오른 거대한 물고기를 작살로 찔러 잡은 노인이 행복에 젖는 것도 잠시, 마을로 돌아가는 길 연이은 상어떼의 습격으로 마을에 도착했을 때 물고기는 뼈만 남아 있다.


아무도 없는 바다에서 홀로 투쟁하는 노인의 내면세계를 그린 <노인과 바다>. 그러나 러닝타임 내내 소년은 노인 곁에서 쉼없이 이야기하고 노래하며 관객들에게 즐거움을 선사한다. 이는 노래와 춤이 가미되는 뮤지컬의 특성을 살리기 위한 연출이기도 하겠지만, 바다에서의 삼일 내내 '소년이 함께 있었으면'하며 소년을 그리워하는 노인의 내면과 둘의 끈끈한 연대를 표현해내는 효과도 톡톡히 누렸다.

극중 노인과 소년의 끈끈한 우정은 감동적이다. 그들의 관계는 초월적이며 그들의 애정은 깊고 단단하다. 소년은 부모님의 설득으로 다른 배에 타면서도 계속해서 노인의 일을 돕고, 마을사람들의 부정적 평판에도 그에 대한 존경심을 잃지 않는다. 노인은 맥주를 사겠다는 소년의 제의를 '같은 어부끼리 못할 것도 없다'며 흔쾌히 받아들이며 소년을 동등한 동료로서 대한다.


2인극으로 이루어진 연극에 비해 두 명의 앙상블을 추가 영입해 극에 활력을 더하고, 명확하고 경쾌한 넘버들은 자칫 지루할 수 있는 소재에 생기를 불어넣는 동시에 누구나 쉽게 스토리를 이해할 수 있도록 돕는다.

아쉬움이라면 역시 소극장이라는 공간적 제약일 것이다. 하지만 그만큼 부족한 공간을 지혜롭게 활용한 지혜가 돋보였다. 배는 극 초반 천으로 덮인 그대로 노인의 집으로 활용되다 출항과 동시에 누추한 옷을 벗고 제 역할을 찾는다. 푸른 조명으로 바다를 표현하고 색색의 조명과 포그효과로 노인의 꿈 속 아프리카의 신비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상어떼의 공격으로 물고기의 살이 다 뜯겨나가는 과정 또한 배우들의 수작업으로 연출되어 흥미롭다.

아무도 나가지 않는 깊은 바다로 나가는 노인의 선구자적 정신과 용기는 존경스럽다. 반면 노인은 바다를 떠도는 작은 새와 돌고래를 보며 연민을 느끼고 강하고 아름다운 물고기에 존경과 애정을 표하기도 한다. 하지만 어부이기에 그와 싸워 이겨야 하고, 그러려면 물고기를 죽일 수 밖에 없다. 이는 생존을 위해 투쟁할 수 밖에 없는 삶의 현장에서 서글픔을 느끼는 많은 이들의 심경을 대변한다.

상어떼와 끝까지 싸워보지만 결국 뼈만 남은 물고기를 달고 쓸쓸히 돌아오는 노인의 모습은 기를 쓰고 경쟁해 원하는 것을 얻어내지만 결국 빈손으로 돌아갈 수 밖에 없는 우리네 인생을 담고있는 듯하다.

"나는 실제 노인, 실제 소년, 실제 바다, 그리고 실제 물고기와 상어를 그리려고 했다. 그러나 내가 그것들을 충분히 잘 그렸다면, 그것들은 많은 것을 의미할 것이다."

헤밍웨이는 <노인과 바다>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극 후반 어깨에 돛을 이고 몇 번이고 넘어지며 언덕을 오르는 노인의 모습이나 두 팔을 벌리고 손바닥을 위로 향하고 자는 노인의 모습에서 예수의 모습을 그렸다는 평도 있다. 보는 이들의 다양한 시각에 작품의 해석은 언제나 열려 있다.

올해 2월부터 오픈런으로 공연되던 뮤지컬<노인과 바다>가 오는 8월 31일 막을 내린다. 연극에 이어 국내에서 최초로 뮤지컬로 시도되었다는 것에서도 의미가 크다. 아직 관람 전이라면 소극장의 밀도 높은 감동과 마음에 이는 잔잔한 파도의 여운을 느껴보는 것도 좋을 듯 하다.
#뮤지컬 <노인과 바다> #리뷰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AD

AD

AD

인기기사

  1. 1 어린이집 보냈을 뿐인데... 이런 일 할 줄은 몰랐습니다 어린이집 보냈을 뿐인데... 이런 일 할 줄은 몰랐습니다
  2. 2 "한 번 씻자고 몇 시간을..." 목욕탕이 사라지고 있다 "한 번 씻자고 몇 시간을..." 목욕탕이 사라지고 있다
  3. 3 미 대선, 200여 년 만에 처음 보는 사태 벌어질 수도 미 대선, 200여 년 만에 처음 보는 사태 벌어질 수도
  4. 4 이창수 "김건희 주가조작 영장 청구 없었다"...거짓말 들통 이창수 "김건희 주가조작 영장 청구 없었다"...거짓말 들통
  5. 5 "민주당 지지할 거면 왜 탈북했어?" 분단 이념의 폭력성 "민주당 지지할 거면 왜 탈북했어?" 분단 이념의 폭력성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