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령도 심청각 북쪽에 세워져 있는 심청 동상. 물로 뛰어들기 직전의 모습을 형상화했다.
정만진
심청은 백령도 북쪽에서 물속으로 뛰어내린다. 죽었다가 살아난 심청은 이윽고 왕후가 된다. 딸이 살아서 돌아왔다는 소식을 듣고 심봉사는 놀랍게도 눈을 뜬다. 눈으로 직접 보아야만 믿을 수 있었던 아버지의 마음이 기적을 만들어내었던 것이다.
앞을 보지 못한다면 얼마나 답답할까? 그래서 사람들은 심청의 아버지 심학규를 봉사로 설정했다. 만약 심청의 아버지가 맹인이 아니라면? 고전소설 <심청전>은 훨씬 재미가 덜할 터이다. 문자가 없던 시대의 사람들은 입에서 입으로 설화와 소설을 전파하면서 이야기의 구조를 그렇게 다듬어갔다.
삼국유사에 전하는 눈먼 아이 희명 이야기삼국유사에도 유명한 맹인 이야기가 나온다. '분황사 천수대비(千手大悲) 맹아득안(盲兒得眼)' 설화다. 세상을 환하게[明] 보는 것이 꿈[希]인 맹인 여자아이 희명(希明)이 설화의 주인공이다.
경덕왕 시절, 서라벌 한기리에 희명이라는 여자 아이가 살았다. 아이는 태어난 지 5년째에 갑자기 눈이 멀어 맹인이 되었다. 희명의 어머니는 아이를 안고 분황사 좌전(左殿) 북쪽 벽에 그려져 있는 천수관음(千手觀音) 앞으로 나아갔다. 어머니는 아이에게 노래를 지어 부르며 빌게 했다.
무릎을 세우고 두 손바닥을 모아천수관음 앞에 비옵니다.1000손과 1000눈 하나를 내어 하나를 덜기를,둘 다 없는 이 몸이오니 하나만이라도 주옵소서.아아! 나에게 주옵시면, 그 자비 얼마나 클 것인가.그렇게 노래를 지어 부르자 멀었던 눈이 떠졌다. 놀랍게도 희명은 앞을 볼 수 있게 되었다. 살아 돌아온 심청 앞에서 그 아버지 심학규가 번쩍 눈을 뜬 채 환호하였듯이, 희명은 어머니의 품에 안겨 줄곧 맑은 눈물을 쏟았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