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훤주 기자가 쓴 <시내버스 타고 길과 사람 100배 즐기기> 겉 표지
산지니
걷기 여행의 기쁨과 즐거움이 알려지면서 유행처럼 번지기 시작하였습니다. 제주 올레길, 지리산 둘레길에 뒤이어 전국 고장마다 수많은 둘레길이 만들어졌습니다.
제주 올레길이나 지리산 둘레길처럼 내로라하는 명소가 된 길을 걷기 위해서는 부러 시간과 비용을 들여 마음먹고 떠나야 합니다만, 굳이 이런 이름 난 길이 아니어도 우리가 사는 주변에는 즐거운 마음으로 걸을 수 있는 아름다운 길이 많이 있다는 것이 <시내버스 타고 길과 사람 100배 즐기기>의 저자, 김훤주 기자의 경험담입니다.
멀리 떨어진 곳이 아니기 때문에 큰마음 먹고 이것저것 준비해서 떠나지 않아도 되고, 비행기나 기차 표를 미리 예매하지 않아도 될 뿐만 아니라, 술이라도 한잔 걸치며 풍류를 즐기려면 시내버스를 타고 떠나야 한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입니다.
<시내버스 타고 길과 사람 100배 즐기기>를 쓴 김훤주 기자는 걷기 여행에 가장 잘 어울리는 교통수단은 자가용이 아니라 시내버스라고 합니다. 그가 쓴 책을 읽다보면 마치 시내버스만 타고도 이런 곳을 모두 다녀올 수 있었다고 '자랑'하는 것 같기도 하고, 자동차 세워두고 시내버스 타고 한번 떠나보라고 '설득'하는 것 같기도 합니다.
이 책은 2011년 한 해 동안 시내버스 타고 다닌 기행문이면서 동시에 <경남도민일보> 연재를 통해 독자들에게 '시내버스 타고 떠나는 걷기 여행'을 소개하고 권유하는 안내문이기도 하였습니다. 마음에 드는 곳이 있으면 이 책에 나온 버스 시간표만 들고도 따라 나설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김훤주 기자는 서문에서 무작정 시내버스를 타고 집을 나서 보라고 합니다. "언제 돌아오지? 버스 배차는 어떻게 되지?" 하는 걱정은 내버리고 물 한 병 과자 한 봉지 정도만 넣고 길을 나서보라고 합니다.
저자의 권유처럼 그냥 마음 내킬 때 훌쩍 떠날 수 있는 것이 '시내버스 타고 떠나는 걷기 여행'의 가장 큰 장점인 것 같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이 책에는 어디에 가서 하룻밤을 묵었다는 기록은 단 한 번도 없습니다.
준비 없이 떠나도 즐거운 시내버스 걷기 여행 이른 아침에 길을 떠나거나 혹은 늦은 밤까지 걷는 경우는 있었지만, 어디 좋은 숙소에서 하룻밤을 자고 왔다는 이야기는 없었습니다. 시내버스 타고 훌쩍 떠나는 걷기 여행이기 때문에 굳이 하룻밤을 묵고 오지 않아도 된다는 뜻이겠지요.
이 책은 봄, 여름, 가을, 겨울로 나뉘어 있습니다. 2011년 봄 진행 속천~행암 바닷가 걷기에서 시작하여 그해 겨울 사천 종포~대포 바닷가 걷기까지, 49군데 걷기 여행지를 다녀와서 소개하고 있습니다.
49곳을 다 소개할 수 없으니 유독 마음을 끄는 몇 곳만 함께 둘러보겠습니다. 저자가 가장 좋아하는 장소라고 여겨지는 곳이 바로 '합천 영암사지 벚꽃길'입니다. 저자와 함께하는 블로거 모임을 비롯하여 여러 번 이곳에 갈 기회가 있었지만 시간과 여건이 맞지 않아 결국 한 번도 가보지 못하였습니다.
합천 영암사지 벚꽃길은 영암사지와 가회마을을 잇는 길인데, 모산재와 영암사지라는 기운 넘치는 장소들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저자는 영암사지를 일컬어 "여기 망한 절터는 오히려 당당"하더라고 하였습니다.
커다란 바위들로 이루어진 모산재는 엄청난 에너지를 사철 내뿜습니다. 영암사지는 모산재의 기운을 통째로 품어 안는 명당인 셈이지요. (줄임) 단정한 삼층석탑과 화려한 쌍사자 석등, 높게 쌓아올린 돌축대가 그런 느낌을 더해주는 것 같습니다.영암사지는 찬찬히 살펴보면 2시간도 족히 걸리고 서두르듯이 둘러봐도 1시간은 잡아야 한다는군요. 벚꽃이 피는 계절에는 더 아름답다고 합니다.
둘레 벚나무에서는 꽃잎이 날리고 소나무들 사이에 들어앉은 진달래는 가녀린 꽃을 흔듭니다.영암사지뿐만 아니라 가회로 내려가는 7km 남짓한 벚꽃길도 한적하고 적막하면서 아름다운 길이라고 합니다. 진해나 화개장터 같은 복잡한 꽃구경을 싫어하는 사람들에게 딱 어울리는 곳이지요.
영암사지에는 나물전과 국수, 두부, 막걸리는 파는 포장마차도 알려줍니다. 근처 마을에 사는 할머니가 손수 기르거나 뜯은 채소와 나물로 안주와 반찬을 만드는 곳인데, 벚꽃이 지는 시기에 딱 맞추면 막걸리 잔에 꽃잎을 띄우는 호사를 누릴 수도 있답니다.
이 책에 나오는 49곳 여행지 대부분에서 저자는 밥과 술 혹은 주전부리를 먹어본 대로 소개합니다. 어떤 곳에서는 점방에서 라면과 과자 부스러기를 안주 삼아 술 한잔 걸치고, 또 어떤 곳에서는 입안에 살살 녹는 돌장어 구이에 소주와 맥주를 섞어 마시기도 합니다. 어느 한 곳도 맨입으로 지나치는 일이 없습니다.
어떤 사람들이 서울에서 부산까지 시내버스만 타고 가는 여행을 했다는 이야기를 읽은 일이 있습니다. 시내버스가 시계를 넘어가기도 하기 때문에 코스만 잘 연결하면 전국 일주도 가능하다는 것이겠지요.
앞으로 김훤주 기자의 시내버스 여행이 경남을 벗어날 수도 있겠습니다만, 어쨌든 여태 다녀온 곳은 모두 경남입니다. 어디를 가든지 하루 만에 시내버스를 타고 떠난 여행이니 그럴 수밖에 없기도 하겠지요.
안민고개, 내년 봄에 꼭 다시 가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