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의 표지.
와이즈베리
사람들이 각자가 일하여 벌어들인 돈으로, 더 편하고 좋은 것을 추구하려는 욕망은 당연하다. 하지만 그런 사고방식이 분야를 가리지 않고, 아무런 고려없이 어디까지든 적용되어도 괜찮은 걸까?
그런 물음에 무엇이 옳은지 판단을 내리지 못하고 머뭇거리던 지난 수십 년간, '성장'을 위해 바쁘게 달려온 우리를 성찰해 볼 필요가 있다는 마이클 샌델의 말은 충분히 일리가 있다. 곳곳에 만연한 자본주의가 우리와 사회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우리는 미처 뒤돌아 볼 겨를없이 살아오지 않았나.
이는 단순히 미국에만 해당하는 이야기가 아니라, 대한민국 역시도 마찬가지다. 해방 이후, 전쟁의 폐허가 된 한반도를 다시 일으켜야 한다는 일념만이 각계 각층을 지배해왔다. 이후에도 IMF 등 경제위기가 찾아왔고, 힘든 현실을 극복하려는 의지만 앞선 채로 '성장과 발전'을 위해 대한민국은 쉼없이 앞만 보고 달려왔다. 자본주의의 문제점을 미처 인식하거나 짚어볼 여유는 충분하지 않았다.
그러는 와중에 '물질적 가치'가 최고의 평가를 받는 시대가 도래했고, 우리는 아무런 비판없이 그 안에 흘러들어와 살고 있다. 마치 글의 서두에 있던 드라마 대사처럼, 우리 세대는 '돈으로 살 수 없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물질만능주의 사고방식에 길들여 있지는 않은가.
마이클 샌델은 지적한다. 기존의 비시장 규범이 지배하던 분야에 침투한 시장주의는, 물질이나 어떠한 관습의 본질을 바꾸어 버린다고. 줄서기와 선물, 경기장이나 학교의 이름을 짓는 것 같은 문제 이외에도, 한 사람의 생명이나 죽음의 의미까지도 변질시키는 현상에서 우리는 돈의 위력을 실감할 수 있다. 그리고 그 타락의 문제점은 분야와 정도를 가리지 않으며, 우리가 미처 알아차리지 못하는 사이에도 벌어진다는 점이다.
이에 샌델 교수는, 시장이 침투하면 안되는 규범은 무엇인지, 그리고 어디까지 허용해야 하는지 애매하고도 결정이 쉽지 않은 문제들을 더 이상 내버려두지 않고 우리 모두가 토론하며 생각해봐야 한다고 말한다.
'물질만능주의'가 팽배한 현실이지만, 그것이 물질만능주의가 옳다는 반증은 아니다. 존엄한 인간의 생명, 혹은 인격이 값싸게 저평가되어 판매되는 것을 원하는 이는 아무도 없을 테니까. 그리고 원빈이 돈으로 사겠다던 '사랑'까지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러기에 우리는 더 늦기 전에 우리 사회를 다시 돌아보아야 하지 않을까. 멀지 않은 미래에 누군가 우리의 마음에도 바코드를 붙여버리기 전에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