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공부한 분들과 함께유교를 포함한 동양의 가치는 미래 세대를 위한 것일지도 모른다. 오히려 지금의 성인 세대는 동양보다는 서양이 더 익숙했다. 달이 차면 기울듯 서양의 가치는 조금씩 줄어들고 동양의 가치는 청년과 학생들을 설득하기 시작했다.
김재형
유교에서 기독교의 교회, 기도원과 비슷한 역할을 하는 곳이 학교와 도서관이다. 학교는 배움을 주고받는 곳이고, 도서관은 '나는 누구인가'에 대한 진지한 질문의 답을 찾아가는 곳이다(가톨릭 수도원이 도서관 기능을 가진 것도 같은 개념).
배병삼 선생님의 유교 강의는 '여민(與民), 호학(好學), 관계와 소통, 인격도야' 이 말 사이를 다양하게 변주한다. 이 말들은 독립적인 의미를 가지지만 서로 관계를 맺고 있다. 그리고, 이 말들이 다양한 맥락 속에서 해석된다. 중국 여러 왕조의 시대적 상황 속에서 유교는 혁신 이론이 되기도 하고 권력 유지의 도구가 되기도 한다. 한국과 일본의 문화적 조건에서 이 개념이 받아들여지는 방법도 다양하다.
결국 2500년 동안 역사와 상황에 따라 해석돼 온 유교는 동양학 하나로 불리 수 있는 학문이 아니다. 유럽의 지성사를 공부할 때 민주주의 하나만 가지고도 로크의 민주주의, 루소의 민주주의, 애덤 스미스의 자유주의 등 다양한 갈래에서 그 차이를 찾아내듯 유교의 공부도 이제 그 단계로 넘어가야 할 때가 온 것 같다.
공자와 맹자, 주자, 동중서, 왕양명, 정주, 정이. 그들이 꿈꾼 세상과 조건이 다 달랐고 실제 다른 이야기를 했음에도 모두 하나의 유교로만 보면 그들 사이에 깔린 다양한 변주를 읽을 수 없다. 정교하게 유교를 재구성해야 하는 이유는 유교 속에 다양한 배경이 깔렸기 때문이다. 이 배경과 유교를 같이 이해할 수 있어야 우리 현실에 적용할 때 무리가 없어진다.
확실히 농촌에서 유교적 담론을 자유롭게 쓸 수 있으면 지역을 새롭게 구상할 때 유리한 점이 많다. 처음 도서관을 시작할 때 이런 담론의 흐름을 이해하지 못했는데, 결국 알지 못했지만 무의식 속에 깔린 흐름을 탄 것 같다.
그리고, 농민인문학 강좌를 시작할 때의 각오도 이 공부를 통해 흐름을 바꾸겠다는 결기를 가지고 시작했는데, 그것도 결국 조선의 선비들이 입지의 단계에서 머리 위에 칼을 걸어두고 공부하면서 세상을 변화시킬 의지를 불태운 것과 흐름을 같이 하고 있었다. 그 흐름 속에 있기 때문에 농민인문학이라는 공부 운동이 될 듯 안될 듯하면서 이어지고 있다.
춘추전국시대라는 인류사에 보기 드물 정도로 혼란스런 시대를 살아냈던 제자백가의 지식인들이 꿈꾼 것은 평화로운 세상, 인간의 존엄성이 실현되는 세상이다. 그들은 유토피아를 그리기도 하고, 현실적 전략을 짜기도 했다. 유교는 그 중간의 길, 중용의 길을 찾고자 한 지혜이고 이 길이 인간의 품성에 가장 부담이 덜 되는 방식이다. 자신을 바꾸고 새롭게 함으로 세상을 밝히려고 했던 그들의 의지는 급격한 변화의 시기, 누구도 나에게 길을 알려줄 수 없는 탈권위의 시대에 나를 찾음으로 길을 찾을 수 있는 방법이다.
'위하여'와 '함께'의 차이를 아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