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복 입은 학생들의 모습. 시트콥 <스탠바이>의 한 장면.
MBC
돌체앤가바나, 엠시엠, 페라가모, 키플링, 루이까또즈, 메트로시티… 요즘 들어 신고접수대장에 부쩍 자주 오르내리는 이름들이다. 워낙 낯선 외국어 이름들이라 처음엔 받아 적기조차 어려웠는데, 가격이 얼마인지 듣고 나니 절대 잊히지 않는 이름이 됐다. 아이들은 학급마다 '명품족'이 몇 명인지 대개 알고 있었다.
하나 같이 지갑과 가방들이다. 등하교 때 쓸 교통카드와 지폐 몇 장이 고작일 텐데, 그렇게 값비싼 지갑을 지니려는 이유가 뭘까. 또 교실마다 개인 사물함이 구비돼 있어 가방이 별 쓸모가 없다고 말할 지경인데, 아이들이 명품 가방에 목맨 까닭을 당최 이해할 수 없다. 어떻든 아이들의 '명품 사랑'은 이미 기성세대 못지않다.
자기 물건을 잃어버려도 명품이 아니면 신고조차 잘 하지 않을뿐더러, 찾으러 오는 아이들도 거의 없다. 아닌 게 아니라, 교내 분실물 보관함에는 주인이 나타나기를 기다리는 물건들로 가득하다. 어디 하나 헤진 구석이 없는 운동화와 가방이, 충전만 하면 곧장 사용 가능한 흠집 하나 없는 2G폰이 수개월째 버려져 있다. 새 걸 구입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잃어버렸다는 얘기가 나올 정도다.
기실 도난 사건은 녹화된 CCTV 영상을 살펴보고, 의심되는 아이들의 소지품을 샅샅이 뒤져 범인을 색출한다고 해결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인권 침해 등 조사 단계의 위험 부담은 그만두고라도, 설령 일벌백계한다고 줄어들 것 같지도 않다. 아이들의 왜곡된 브랜드 선호 현상을 돌려세우지 않는 한,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일 수밖에 없다.
"선생님, 요즘 구세대와 신세대를 구분하는 새로운 기준을 알려드릴까요? 바로 명품 이름을 얼마나 줄줄 꿰고 있느냐에요. 아이들 사이에 요즘 뜨는 명품을 모르시는 선생님은, 인정하기 싫으시겠지만, 어느새 구세대가 된 거죠." 갓 마흔을 넘긴 처지에 명품 이름 모른다는 이유로 아이들로부터 졸지에 구세대로 낙인 찍혔지만, 이러한 분위기를 학교 홀로 막아내기란 역부족이다. 거칠게 말해서, 학교가 몸살을 앓고 있는데도 사회는 물론, 가정조차도 나 몰라라 하거나 되레 아이들의 브랜드 선호 현상을 부추기고 있는 탓이다.
TV나 인터넷에선 광고의 홍수 속에 끊임없이 명품 소비를 부추기고, 자녀의 기를 살려주겠다며 무리를 해서라도 갖고 싶다는 걸 사주는 학부모들이 있는 한 학교는 도난 사건의 뒤치다꺼리나 하는 곳일 수밖에 없다. 아이들 간에 위화감 조성을 막기 위한 교복조차 가격대별로 서열화된 현실에서 더 말해 무엇할까.
"선생님, 애들이 좋아하는 명품 모르면 구세대인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