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천 선암사 뒷간.
김당
고향 집에서 가까워 송광사와 선암사를 가끔 가는 편인데, 2009년 5월 초파일을 앞두고 카메라를 메고 선암사에 갔을 때는 뒷간이 하필 수리 중이었습니다. 편액에는 'ㅺㅏㄴ뒤'로 표기되어 있지만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읽어야 합니다. 사이시옷이 '간'의 ㄱ자 앞에 쓰인 것은 조선시대의 사이시옷 표기방식에 따른 것입니다.
오래된 절집 뒷간을 이용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겪는 일이지만, 남녀의 공간만 유별할 뿐, 개인의 공간은 막힘이 없는 '앞트임' 방식이어서 여간 꺼림칙한 것이 아닙니다. 칸막이가 되어 있기는 하나 아이들이라면 몰라도 어른들이 들어서면 볼일 보는 사람과 눈이 딱 마주칠 정도로 그 높이가 낮기 때문입니다.
또 이른바 '푸세식 측간'을 이용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겪는 일이지만, 가장 큰 두려움은 근심을 해소하려고 해우소(解憂所)에 갔는데 정작 볼 일을 보다가 똥물이 튀지는 않을까 하는 걱정입니다. 그런데 선암사 뒷간은 전혀 그런 걱정을 할 필요가 없습니다. 정월 초하룻날 똥을 싸면 그 떨어지는 소리가 섣달 그믐날 들린다는데, 혹시 1년 뒤에 다시 가면 모를까, 무슨 걱정이겠습니까?
또 2층으로 돼 있는 선암사 뒷간은 자연 순환을 위해 아래층에 재와 볏짚을 깔아두었기 때문에 위로 튈 일도 없답니다. 예로부터 부지런한 농사꾼은 이웃집에 갔다가도 볼 일이 생기면 일부러 자기집으로 와서 볼 일을 봤다고 합니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먹고 싸기 마련인데 그것이 다시 거름이 되어 음식으로 돌아오는 자연의 순환고리로 보면 당연한 처리법입니다.
그래서일까요? 선암사 뒷간은 세계를 매료시킨 바 있습니다. 180년의 오랜 전통을 자랑하는 영국 첼시 플라워쇼는 지난해에 선암사의 전통화장실을 소재로 한 작품에 최고상이라는 영예를 안겼습니다. 설치미술가 황지해 작가가 출품한 '해우소 가는 길'이 한국 전통화장실이 지닌 '생명의 환원'과 '비움'이라는 철학적인 소재를 한국의 토종 식재를 이용해 정원 디자인으로 재해석한 것으로 평가받은 것이 그것입니다.
해우소에서 주의할 점 - 힘쓰는 소리를 내지 말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