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마와 호코나기나타호코, 칸코호코, 후네호코, 이와토야마, 토로야마, 아야가사호코, 캇쿄야마 (가마는 각각 이름과 유래가 다르다. 이날 행렬에 참가한 가마는 모두 32대로 각 가마의 유래는 이 기사 끝에 소개한 책에 자세히 나와 있다. 가마 이름은 시계방향 순)
이윤옥
기온마츠리의 꽃이라고 할 수 있는 가마의 출현은 당시 유행하던 역병(전염병) 퇴치를 위한 것에서 유래했지만, 오늘날 이러한 초기의 의미를 간직하고 있는 가마는 나기나타가마(長刀鉾) 정도다. 다른 가마들은 기온신앙(祇園信仰, 기온마츠리의 유래를 갖고 있는 야사카신사 신앙)과 관계없는 일본의 전설을 토대로 꾸미거나 중국의 고사를 토대로 꾸민 가마가 많다. 가마뿐만이 아니라 1965년까지 미나미간논야마(南観音山)를 비롯한 9기 가마는 정식 가마행렬에서 빠져 별도의 가마행렬에 속하다가 1966년 마츠리에서 정식가마 행렬에 합세하는 등 가마행렬 자체도 많은 변화를 거쳐 오늘에 이르고 있다.
또한, 에도시대(江戸時代 1603~1867)에는 여성이 마츠리에 참가한 기록이 있으나 에도 중기 이후에는 여성의 마츠리 참여가 금지돼 현재도 가마행렬에는 여성금지를 고수하고 있다. 그러나 최근 여성의 참여를 용인해주는 "가마보존회"가 생겨나기 시작했다. 여성을 참여시킬 것인지를 각각 가마보존회 판단에 맡기는데 다만 참여시 "기온마츠리가마연합회"에 신고하게 되어있으며, 현재는 미나미간논야마(南観音山)에서 2명, 칸코호코(函谷鉾)에서 3명의 여성이 가마행렬에 참여하고 있다.
이날 가마행렬이 지나가는 연변에는 기온마츠리에서 빼놓을 수 없는 부적을 판매하고 있는데 이를 "치마키"라고 한다. 치마키는 야사카신사의 제신인 우두천왕이 마을에 내려와 하룻밤 묵으려고 할 때 부잣집에서 거절당했으나 마음씨 고운 동생 소민장래(蘇民将来)는 우두천왕을 하룻밤 재워 주었다.
이에 감복한 역신(疫神)이 소민장래 자손들에게만은 치마키를 주고 이것을 달아 두면 전염병으로부터 보호받게 해준다고 약속한 데서 유래한 일종의 부적이다. 가마행렬 중간중간에 이 부적을 나눠주기도 하는데, 필자도 한 개 받았다.
▲치마키가마행렬 때 ‘아부라텐진야마’ 팀이 관람객에게 치마키를 나눠주었는데 사진은 필자가 받은 부적으로 건강을 지켜준다는 믿음이 있다.
이윤옥
가마행렬 도중 츠지마와시(辻回し)라고 해서 12톤에 달하는 거대한 가마의 방향을 바꾸는 광경이 자주 목격된다. 이는 가마 구조상 방향전환이 어렵기 때문에, 도로에 대나무를 깔고 물을 뿌려 미끄럽게 한 후 기온바야시(악사)의 가락에 맞추어 힘찬 구령과 함께 통일된 행동으로 활기차게 방향을 트는 모습은 무더위 속에서 한줄기 소나기처럼 씩씩하고 활기차다. 뜨거운 폭염 속에서 32대의 가마가 한 대씩 한 대씩 지나갈 때마다 일본인들은 환호와 손뼉으로 화답했다.
필자도 이들 틈에 끼어 열심히 응원의 손뼉을 쳤다. 필자가 친 손뼉은 두가지 뜻에서였는데 하나는 무더위 속에서 가만히 앉아 있는 것만으로도 숨이 차는데, 육중한 가마를 끄는 사람들은 어떠할까 싶은 마음에서였고, 또 한 가지 이유는 1100여 년 전 기온마츠리의 유래가 고대한국에서 비롯되었는데, 오랜 세월동안 일본인들이 부단히 지금까지 갈고 닦아 나온 것에 대한 고마운 마음에서였다.
혹자는 그럴지 모른다. 이제 새삼 기온마츠리의 유래를 따져서 무엇하냐고 말이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스가타 (菅田正昭) 씨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그의 말을 들으면 앞으로 일본의 마츠리가 언제까지 지금처럼 지속할 지는 미지수이다.
"현재 마츠리 구경꾼은 해마다 늘어나고 있지만, 정작 마츠리에 참여해서 육중한 가마를 끌거나 밀어주는 사람들은 점점 줄어들고 있다. 마츠리 본래의 종교성이 희박해지면서 지역의 이벤트화가 큰 원인이다. 앞으로 저출산 시대를 맞아 오늘의 마츠리가 어떤 상황을 맞게 될는지 걱정이다."한국인으로 기온마츠리를 지켜보면서 유감스러운 것은 신라의 신 우두천왕의 노여움을 달래려고 시작한 기온마츠리에 대한 유래를 제대로 알리지 않은 채, 화려한 가마행렬만을 내세우고 있다는 점이다.
차라리 기온마츠리의 유래를 역사기록대로 밝혀 둔다면 꾸준히 한국인 관람객들도 늘어날 것이며 더 나아가서는 옛 신라지방을 중심으로 기온마츠리를 통한 교류의 장을 마련하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해보았다.
결국 마츠리(matsuri)는 맞으리(mazuri)로 사람이든 신이든 맞이하여 화목하게 지내자는 뜻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던가!
▲포르투칼인의 기온마츠리기온마츠리를 보는 눈은 제각각 다를 것이다. 포르투갈에서 온 서양인이 유카타를 입고 야사카신사에 왔다가 필자와 찍은 사진
이윤옥
폭염에 지쳐 하나 둘 예약석에 앉아 있던 사람들이 자리를 뜬 뒤에도 필자는 오래도록 신라신 우두천왕을 기리는 기온마츠리의 후끈한 현장을 떠날 수 없었다.
일본인이 보는 기온마츠리와 서양인이 보는 마츠리 그리고 기온마츠리의 역사와 유래를 아는 한국인이 보는 마츠리는 같은 것 같지만, 다르다는 사실을 일본인들은 알고 있을까? 자리에서 일어나려는데 올해 임시로 선보인 마지막 33번째 가마가 다 지나간 자리 위로 천여 년을 울어 온 듯한 매미 소리가 우렁차다. 가마가 떠난 자리에서 오이케도오리가 떠들썩하도록 매미들은 신라인의 후손이 들으라고 그렇게 울고 있었다.
<기온마츠리 정보안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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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온마츠리는 매년 축제의 절정인 가마행렬 날짜가 변경되므로 미리 조사하고 간다.(매년 7월 17일 전후) *기온마츠리를 보러 가는 사람은 챙이 깊은 모자와 얼음물, 찬수건 등은 넉넉히 준비해간다. *JR교토역 2층 종합안내소에 가면 한국어로 다양한 자료와 안내를 받을 수 있다. *기온마츠리의 32대 가마를 비롯한 상세한 기온마츠리의 유래는 필자의 저서 야사카신사 사이트 : http://web.kyoto-inet.or.jp/org/yasaka/index.html <신 일본 속의 한국문화 답사기> p106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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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대자보에도 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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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박사. 시인. 한일문화어울림연구소장, 한국외대 외국어연수평가원 교수, 일본 와세다대학 객원연구원, 국립국어원 국어순화위원, 민족문제연구소 운영위원회 부위원장을 지냄
저서 《사쿠라 훈민정음》, 《오염된국어사전》, 여성독립운동가를 기리는 시집《서간도에 들꽃 피다 》전 10권, 《인물로 보는 여성독립운동사》외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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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염 속에 12톤 가마를 멘 일본인들...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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